근황

말 그대로 근황

by 박승연

출근이란 걸 제대로 한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휴직을 하기 전에 방학이 한 달 조금 안 되게 있었으니 일 년 반이라고 말하기에 충분하다. 휴직은 일을 쉰다는 뜻이지만, 원래 몸 담고 있던 일을 하지는 않을 뿐 다른 일을 해야만 했으니 '휴'라는 글자가 손끝에 툭 툭 걸린다.


첫 출근은 설렌다. 첫 출근을 많이 해봤다. 구간을 나누는 것은 내 마음이니 나에게 첫 출근이란 네 번이 있다. 네 번째에 해당하는 이번 출근은 굳이 가지 않아도 되지만 내가 원해서 간다고 했다.


그만큼 내 일자리가 그리웠다.


기약 없는 일과 있는 일 중에서 무엇이 더 힘들까.

기약 없는 일은 포기하고 잊고 살다 보면 어느새 내 앞에 와 있기도 하지만, 기약이 있는 일은 손가락을 꼽게 된다.


그래봐야 소용없는 짓임을 머리로는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내가 입으로도 하는 말이지만 몸은 다르게 움직였다.


깨끗하게 정돈된 내 자리.

반기는 직장 동료들.

주어지는 권한과 그에 따른 책임.

꾹꾹 눌러왔던 내 목표들.


그것들과 함께 펼쳐나갈 앞으로의 일상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출근길에 코가 먹먹해졌다.

비염때문이라며 핑계를 대어 보지만,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은 무어라 설명할 텐가.



부지런히 도 돌아다닌다. 내 지도에는 별이 많다.

회색 별은 가지 않은 곳,

색이 있는 별은 재방문 의사가 있는 곳.

요즘에는 카페를 참 많이 간다.


커피 한 잔에 팔천 원이면 꽤나 비싼 값이지만,

그 공간이 나에게 주는 감상이 제 값을 하는 경우가 많은 요즈음의 카페는.


단순히 식음료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공간을 임대하는 곳이라고 나는 새롭게 정의한다. 매일 같은 카페를 가지는 않지만, 카페에 방문하는 일은 질리지가 않는다.


사람은 반드시 매일매일 해도 질리지 않는 것을 찾아내어야만 한다.


그것이 야구이건

게임이건

영화감상이건

독서이건 상관이 없다.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고 싶은 일 한 가지 정도가 없다면 너무 괴로운 삶이다.


더 중요한 건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람을 찾는 일이겠지.


이렇게 뻔질나게 다니다가도 어느 순간 발길을 툭 끊어내는 시기도 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그와 그녀는 가장 가까운 남이며

가장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남이다.

'남'이다.


법적 구속력과 사회적 약속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남'이다. 이것이 원칙에 깔려 있어야 자질구레한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


쟤는 왜 저래보다는 저 사람은 저렇구나.

이게 기저에 깔린 관계야말로


지속가능한, 아름다운 관계.



이번에도 언덕 꼭대기의 꼭대기 집이랍니다.

층이 높지는 않지만, 보이는 풍경은 10층은 되어 보여요.

언덕이 나지막하여 오르내리는 데에는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언덕이 끝나고 나면 앞에 작은 천을 따라가는 큰 도로가 보이는데요. 이 도로가 서울의 모든 곳과 연결되어 있다니, 마치 대동맥을 직접 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달리기 좋은 코스가 한강까지 이어져 있어

매일 아침 달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고요.


한 곳을 뱅뱅 도는 것에 익숙하면서도 이골이 나서 여기를 기점으로 어디를 돌아볼까 수많은 코스를 계획해 봐요.


강이 근처에 있다고는 하지만, 영 티는 안나는 이곳이

바다가 근처에 있다고는 하지만, 영 티가 안나는 군부대에서의 일 년 반과 겹쳐 보입니다.


매일 타고 다니던 익숙한 3호선은 이제 근처에 없어요.

3호선은 사람들이 좋아라 하는 노선이지만, 심심한 20대랑은 큰 상관은 없으니까요.


이제 내가 매일 마주할 노선은 6호선인데요.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한산한 노선이라고들 합니다.

다만, 놀기에 좋은 곳들을 많이도 지나가


새나가는 지갑을 어떻게 동여매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예전에 출근이 걸어서 10분이라며

출근 시간이야말로 명상의 시간이니 뭐니 했던 철없는 헛소리를 했던 적이 있는데요.


도어 투 도어 80분을 해보니까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앉아만 갈 수 있다면 할만할지도?


물론 앉아서 가려면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빨리 도착합니다. 사람이 붐비는 걸 싫어하기에 그냥 일찍 출근하고 말지라는 이 생각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멀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2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나온 것만 해도 어디예요?


미니멀리스트로 살자고 수 없이 다짐했지만,

예쁜 것을 보면 계속해서 주워다 오는 까치마냥

계속 뭔가를 채워 넣으려는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이사할 때 큰코다쳐봐야 정신 차리겠죠.


발 디딜 틈 없이 내 취향들로 가득 찬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요즘이

나의 행복한 근황이랍니다.



2026. 2. 15.(일) 13:51, 5 생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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