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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출근길

미리 죄송합니다.

by 박승연

짧아진 출근길이 아쉽습니다.


직장을 옮기고 삶의 터전이 바뀌며 출근에 걸리는 시간이 짧아졌습니다. 차량으로 40분 걸리던 거리가 도보 10분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는 이 변화가 못내 아쉽습니다.


대학시절 집에서 학교로 가는 길은 오래 걸려봐야 15분입니다. 대학가 주변의 원룸촌이 다 그렇듯이 교문 주위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았습니다.


숙취에 절어 있는 선배, 급하게 나오느라 단장을 하지 못해 민망한 듯 얼굴을 가린 후배와 신호등에서 마주칩니다. 멋쩍게 웃고 각자 갈길을 갑니다. 이들은 모두 학교로 가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굳이 멀리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기에 다들 그랬습니다. 이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나니 취업을 하게 되어 정든 공간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인구 3만 군지역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직장의 위치가 대학 시절을 보낸 익숙한 도시와 가깝습니다. 차량을 이용한다면 한달음입니다.


'차를 가지고 싶다.' 이런 욕심 때문인지, 정든 도시와 멀어짐이 아쉬움인지 나는 도시에서 살며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선택을 합니다. 차를 제대로 운전해 본 적도 없건만, 덜컥 차를 산 다음에 편도 40분 거리의 출근길을 마주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운전이 익숙하지 않아 마주하는 매일의 출퇴근이 도전입니다. 꽉 막히는 사거리는 차량이 빼곡히 늘어서 있고, 끼어들기를 적절한 순간에 하지 못하면 사방에서 경적소리가 날아옵니다. 초보는 그럴 때 더 위축이 되니 고역입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생활에 적응했습니다. 그렇게 2년간 차량을 이용해 출퇴근을 했습니다. 직장에 1년쯤 다녀 익숙해지자, 마음속에 묻어뒀던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서울에서 살고 싶다.' 서울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딱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을 인서울을 못했으니 직장이라도 서울에서 다녀보고 싶었습니다. 서울은 나에게 화려한 겉모습만 보여줄 뿐 속내를 보여준 적은 없어서인지 더 궁금했습니다.


서울로 이직을 했습니다. 서울의 교통 체증은 익히 들어왔기에 놀랄 일은 없었습니다. 알고 있다고 해서 겪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직장 근처에 집을 구했습니다.

양재대로를 뚫어야 하는 내 출근길은 차량을 이용하나 도보로 걸어가나 피차일반입니다. 몸이 가볍고 신호가 나를 반기는 날에는 뛰어가는 게 더 빠릅니다. 차량을 이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짧아진 출근길은 기상알람을 세 번 정도 미루는 여유를 내게 주었습니다. 집 근처에서 커피를 한잔 사는 여유도 부리곤 합니다. 짧아진 출근길은 다 좋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한 달 정도가 지나면서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응어리가 몸에 쌓이는 기분이 듭니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빈 곳을 참지 못하는 내 성격상 하루 중에 생각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없습니다. 긴 하루 중 차량을 이용한 출퇴근 80분이 나에게 주어진 여백이었던 것입니다.


그 여백을 불편히 여겨 가득 채우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전방을 주시하며 목적지로 향하는 행위이기에 잡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깐 명상의 시간, 하루를 시작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2년을 보내다 갑자기 사라지니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한 시간 넘게 고통받으며 출퇴근을 한다면 달라지겠지만요. 내 아쉬움은 아쉬움이지 않습니까. 복직을 하면 적당히 먼 거리에서 출퇴근해 볼까 고민해 보는 오늘입니다.


[부록]

지금은 군인이라 군부대에 있습니다. 집에 해당하는 생활관에서 직장에 해당하는 행정반까지 걸어서 5초가 걸리네요.


진정한 의미의 직주근접이지만,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2025. 3. 2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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