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일기장에

8월 휴가(20250812)

by 박승연

군인에게 휴가는 어떤 의미일까요? 휴가가 내게 주는 설렘의 정도는 직장인에게 있어 금요일 저녁과 교사에게 있어 방학식 전날 그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요.


직장을 다니는 누구라도 금요일을 기다리고, 어떤 교사라도 방학날을 기다릴 겁니다.

그리고, 군인인 휴가를 기다리고요.


확실히 주말보다는 기쁘고, 방학보다는 덜 기뻐요. 다만, 아무리 바쁜 학기, 주중이라고 할지라도 온전한 개인의 시간은 보장되기 때문에, 군인에게 있어 휴가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휴가를 출발하기 전에 옷매무새를 다듬어봅니다. 옆머리가 삐죽거리는 군인은 부대에 있을 때야 뭐 머리를 하얗게 밀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밖에 나올 때면 티를 내지 않고 싶어 안달입니다.


그래서 옆머리를 깔끔하게 눌러봅니다. 그래봐야 짧은 까까머리라 누가 보아도 휴가 나온 군인이지만, 그나마 덜 그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죠.


친구 집에서 사복으로 환복을 하고 나면 기분이 새롭습니다. 내가 군인이라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해 줍니다. 머리만 손으로 가려낸다면, 내가 사회에서 보여주던 원래의 모습과 가까우니까요.


환복을 하게 되면 괜스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보기도 합니다. 한 손에는 베라를 들고 바깥공기를 만끽합니다.

군인의 소심한 길티 플레저.


[여의도역 3번 출구]


일행과 여의도에서 만났습니다. 여의도는 항상 사람들이 붐빕니다. 주변은 다 빌딩 숲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장면이 숨 막힐 정도로 답답하여 빨리 뜨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하겠죠. 하지만 나는 이러한 붐빔이 나쁘지 않습니다.


사람구경이라는 말이 괜히 있을까요? 6시가 조금 넘어서 만났지만, 역시 사회의 시계는 빨리 돌아갑니다. 놀다 보니 벌써 새벽이네요.


금요일에 퇴근하고 이렇게까지 늦게 놀아준 일행에게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지난번에 볼 때는 얼굴에 피로가 가득해 보였는데, 이번에 보니까 얼굴이 좀 피어 보여 기쁩니다.


휴가 첫날을 즐거이 보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대중교통이 신기하리만큼 잘 되어있는 서울은 새벽에도 버스가 다닙니다.


원래 같으면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입추라는 절기를 맞으니 밤바람이 시원해 홍대에서 노량진까지 걸어가도 되겠다는 용기가 생깁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반가운 친구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새벽의 산책을 지루하지 않게 달래준 녀석의 소식에는 반가움도 그리움도 가득합니다.


오랜만에 전화로 회포를 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훌쩍 흘러 새벽 4시네요. 다음번의 만남을 기약하면서 전화통화를 마무리합니다.


자고 일어나니 토요일입니다. 토요일은 용산에서 약속이 있습니다. 용산이 주는 기운이 좋습니다. 용산은 서울에서도 그 위치가 명당이라 부를법합니다.


풍수를 보르고 본다고 할지라도 서울 3대 업무지구의 중점에 위치한 이곳은 놀거리도, 볼거리도, 즐길거리도, 그리고 자연환경도 적당합니다. 용산정비창 개발, 동부이촌동 개발, 용산공원 반환 등의 이슈로 더 좋아질 일만 남은 이곳은 새로운 서울의 중심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용산 : 국립 중앙 박물관]


날이 좋아서 그런지 길에 사람이 가득합니다. 서울에서는 기다림이 일상입니다. 돈을 쓰려고 마음을 먹어도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카페도, 주차장도, 식당도 날이 좋은 날에는 돈과 더불어 시간까지 넉넉하게 사용할 마음을 가지고 움직여야 합니다.


[달달한 맛이 일품이었던 대파 피자]


평소에는 잘 방문하지 않는 세련된 분위기를 카페를 가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카페의 민족 아니겠어요. 날을 보고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소위 말하는 분좋카부터 스타벅스까지 4명이서 담소를 나눌만한 공간은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카페를 가는 것은 포기하고 바로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정적을 끊어주던 "그럼 우리 시간도 애매한데 빠른 스타트 할까요."라고 해주신 분께 감사합니다.


밥을 먹고 시간이 애매해서 카페에 들렀습니다. 다음에는 서울에 방문할 때면 동선을 확실하게 짜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방문하고 싶어 하는 시간대에는 사람이 너무 붐빕니다.


7시에 겨우 들어간 곳에서 재미있게 놀다 보니 어느새 식당 이용시간이 다 흘렀습니다. 쉬운 일 어디 있겠냐만, 사람이 줄을 서서 들어가는 그런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부럽습니다.


길을 나와서 걷다 보니 편의점이 보입니다. 편의점에서 음주를 했던 기억은 아주 흐릿한데요. 일행 한 명이 편의점은 어떻냐는 의견을 내주어 우리는 자리를 깔았습니다.


기가 막힐 정도로 날씨가 좋아 시간 가는지도 모르겠더군요. 8월의 날이 이렇게 좋다면 앞으로 다가올 9월과 10월은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니 또 새벽 4시네요. 피곤하면서도 기뻤습니다. 체력을 갈아 넣어가면서 놀아줘야 짧은 휴가의 시간이 아깝지가 않겠죠.


세 번째 날은 일요일입니다. 딱히 정해진 약속은 없지만 7시가 되니 눈이 떠집니다. 습관이라는 것이 무서워요 매일 6시 30분에 기상을 하는 나는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누가 나를 깨우기라도 한 양 7시에 벌떡 일어났건만, 날씨가 흐려서 조금 더 침대에서 미적거렸습니다.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했습니다. 냉면을 하나 먹어볼까 하고 을지면옥을 찍었지만, 일요일은 영업하지 않는 날이네요. 아마 이런 날에는 오픈을 했다고 할지라도 가서 사람이 너무 많아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노량진에서 출발해서 안국으로 가는 길이 예뻐 자동차 본넷에 휴대폰을 끼워두고 길거리를 촬영했습니다. 기억을 소유하려는 행위는 끊어내기가 참 힘이 듭니다. 저처럼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래요.


[용산역 인근 : 저 멀리 남산이 보인다]

[광화문]


안국에 가서 딱히 한 게 없습니다. 점심을 대충 때우고 차에서 잠깐 졸고 나니 시간은 벌써 16시네요. 광교에서 약속이 있어 광교로 이동합니다.


서울에서 운전을 하다가 보면 종종 겪곤 하는 즐거운 일 중 하나는 내가 가는 방향은 차가 막히지 않고, 내 반대방향은 차가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말의 마지막인 일요일 저녁에는 서울로 들어오는 길은 막히고, 밖으로 나가는 길은 시원하게 뚫려있습니다.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는 카니발을 운전하는 것처럼 시원하게 광교로 가니 수원도 서울에서 참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인천으로 이동했습니다. 역마살이 도졌나 참 많이도 돌아다니죠. 서울에는 친구가 없어서 누군가를 만나려면 내가 이동을 해야 합니다. 내가 조금 더 고생하고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으니 완전 수지타산이 맞는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인천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보고 돌아오는 길은 좀 험난했습니다. 길을 계속 헷갈려 35분이면 올 수 있는 길을 한 시간이 걸려서야 겨우 겨우 도착했네요.


서울에서는 차를 운전하다가 길을 잘못 들면 빙 둘러가야 하는 경우가 흔해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또 새벽 4시에 잠에 들었습니다.


일정의 마지막 날 월요일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가방 사이로 러닝화가 나를 보면서 애처롭게 속삭입니다.

"야 씨 이럴 거면 나 왜 가지고 왔어."


굴비처럼 묵혀놨던 러닝화가 보여요. 요즘에는 투박한 신발을 신고 뛰는 것에 재미를 붙였는데요. 이번 휴가에는 멋진 신발을 신고 뛰어보고 싶어서 내가 가진 가장 좋은 러닝화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럴 때라도 안 신으면 계속 안 신게 될 것 같아요.


[아디오스 프로4 내가 신기엔 너무 예민하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을 하는 내용이지만, 꼭 가격이 비싸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냥 나에게 만족을 주는 정도는 가격에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나는 300원의 동아 스피디볼을 가장 좋아하고요. 러닝화는 쿠셔닝이 거의 없다시피 한 투박한 녀석을 가장 좋아합니다. 요즘 러닝 붐이 일면서 러닝이 생각보다 꽤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는 의견이 거세지고 있는데요. 나는 돈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러닝 코스를 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강 다리를 두 번 건너고, 반포, 이촌, 용산, 노들, 흑석을 지나가는 이 러닝코스는 길도 매우 쉽고 딱 10km라서 초심자와 함께 달리기에도 좋습니다. 보통은 잠수교에서 출발하는데 오늘은 노들섬에 차를 대어놓고 출발했습니다.


잠수교에서 출발해서 이촌동의 평지를 맞게 되면 몸이 다 풀리고 몸에 열감이 올라올 때 즈음 흑석의 언덕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노들섬에서 바로 잠수교 쪽으로 이동을 하니 몸이 채 풀리지 않은 상태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좀 힘들었습니다. 피곤하지만 않았다면 돌아오는 길에 여의도를 넘어서 하프를 뛸만했을 텐데요. 도저히 피곤해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짧게 10km만 뛰었습니다.


이렇게 4일간의 휴가를 보냈습니다. 4일간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모르겠어요. 만나면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한 4일간의 시간이 재미있고 소중했습니다.


복귀날이 아쉽지 않기가 참 쉽지 않은데, 정말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흡족한 상태에서 돌아가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더군요.


다음에 또 언제 나올지는 기약이 없지만, 나는 또 이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겁니다. 나랑 놀아준 사람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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