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하늘에 머무는 안개색
느릿느릿해진 시간 속에 잠겨서 걸었다. 그 길에는 무수한 생각들이 동행했다. 짧게는 바로 어제의 일과, 길게는 아주 오래된 기억으로 자리 잡은 시시콜콜한 단상들이 뒤엉켜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하였다. 일이 몸에 붙여 건강을 해치는 일도 있었고 마음에 상처가 덧나 곪아 터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 속에서 나는 과연 행복했을까? 힘겨운 현실을 만날 때마다 주어진 상황을 시의적절하게 잘 이겨내며 살았다고 말하기에는 개운치 못한 구석이 있다.
시대의 변화에 혼자만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할 때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자기 개발서 책들을 읽었다. 그때마다 그것에 나를 맞추어 보겠다고 안간힘을 썼다. 즐거움보다 열심히 사는 것에 치중하며 살아온 시간은 깔끔하지 않고 흐릿한 안개처럼 잔상으로 남아 아쉬움과 후회가 섞여 있었다. 현실에서 요구하는 이런저런 모습들은 때때로 숨이 턱턱 차오를 만큼 힘들었다.
한참을 걷다 보면 조금씩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것처럼 마음이 맑아진다. 또는 미뤄두고 잊었던 계획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몸이 힘들 때까지 걷다 보면 그냥 걷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혼자 걷는 길의 동반자는 침묵이다. 그 속에 깊이 잠기면 자기 내면 깊은 곳의 울림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유한 느낌이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이 오롯이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며 걸을 때 침묵은 다정한 동반자로 내 안에 함께 있다. 침묵은 비록 소리 없는 행위지만 그 안에는 맑은 에너지와 고요한 기운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계이다. 어떻게 마냥 자기 좋은 것만 하고 살 수 있겠는가? 이런저런 상황에 맞추어 사는 것이 맞지, 불평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산책하면서 혼자만의 보폭으로 걸어보니 참 편했다. 걷다가 마주친 작은 것 하나에 마음을 열어 오래도록 그 자리를 맴돌고 자기만의 속도로 걷는 행위를 통해서 시간의 여유와 마음의 풍요를 함께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운동하려는 목적으로 산책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즐기기 위해서 산책을 한다. 이렇게 마음을 달리하니 나갈까 말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오늘은 어디를 걸어볼까?라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어제와 닮은 듯한 오늘이지만 그 하루는 조금씩 새롭다. 그 속에서 나는 마음의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서로 상처 주지 않고 모난 것을 다듬어 가며 자연스럽게 삶의 흐름에 나를 놓아두고 싶다. 굳이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각을 세우지 않으며 둥글게 살고 싶다. 코로나로 변화된 삶을 1년 정도 지내다 보니 자연이 주는 정서적인 안정감과 주변 사람의 고마움을 새삼 알게 되었다.
사람은 어울려 부대끼고 살아야 사는 맛이 난다.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사람과의 만남을 지양하는 것을 덕목으로 여기는 요즘, 본의 아니게 비대면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타인을 대면하고 그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만의 보행 속도로 천천히 혹은 빠르게 걸으며 헝클어진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 혹은 누군가 옆에 함께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는 시간, 산책은 이렇게 여러 가지 형태로 내 앞에 나타난다. 그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과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이렇게 귀한 시간이 진중하게 고맙다. 그래서 나는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