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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고래 Apr 03. 2023

빈방에 모시조각보를 걸어두었다

시간의 조화로 만들어진 자연색

 

                                                                   


 우연히 천연염색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의류직물을 전공으로 했던 친구가 천연염색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는데 ‘너도 와서 배워라’ 하는 말에 여러 달 천연염색을 배웠다. 소풍 가는 마음으로, 직장 생활하느라 한동안 소원했던 친구 만나는 재미로 일주일에 한 번씩 양평을 다녀왔다. 


 홍화, 개암나무열매, 대황, 쪽, 오배자 등 생소한 이름의 재료들로 염색한 천들은 평소에 보던 색과 달랐다. 청명한 느낌의 색에는 직물이 숨을 쉬는 듯한 안정감과 자연스러움이 배어났다. 단아하면서 섬세한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었다. 각기 하나의 염색물에 익명주, 생명주, 모시, 무명 네 가지 천으로 염색을 하였다. 천이 가진 고유의 속성에 따라 색이 조금씩 다르게 물들었다. 천의 종류에 따라 색의 채도와 분위기가 다른 것이 저마다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생각이 들어 염색하는 시간이 재미있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모시였다. 베보다 곱고 빛깔이 흰 천에 도라지꽃처럼 선명한 보라색 물이 들고, 희미하게 여린 노란색과 개나리처럼 터질 듯한 샛노란 색이 물들고, 칼로 베일 듯 선명한 쪽빛 물이 들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이렇게 고운 것을 어디에 쓸까? 고민하는 내게 친구가 또 한마디 한다. 바느질 배워 볼래? 그렇게 나는 내친김에 전통공예 바느질도 함께 배웠다.    

  

손바닥 만한 조각, 혹은 그보다 더 작은 조각들을 하나씩 이어 붙이는 바느질은 오랜 시간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전통 바느질은 시접을 접어 넣어 쌈솔로 바느질하기 때문에 앞뒤면의 구분이 없이 깔끔하며 시접이 겹쳐진 부분에서 또 다른 색이 나온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접 부분은 하나의 조각이 테두리를 이루며 서로 다른 색을 구분하는 경계 역할을 한다. 크기가 각기 다른 작은 조각들 하나로는 쓰임이 별로 없다. 그러나 이렇게 이어 붙이는 수고를 곁들이면 용도가 정해진다.


 긴 시간 동안 100여 장이 넘는 조각들을 하나씩 이어 커다란 창문 가리개를 만들었다. 손가락만 한 크기까지도 버리지 않고 다 이어 붙여 그 쓰임을 소홀이 하지 않았다. 바느질을 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진다. 걱정이 많은 날들, 잠이 오지 않는 밤들, 유난히 속이 시끄러운 날에는 텅 빈방에 앉아 돋보기를 쓰고 바느질을 했다. 고개를 숙이고 흩어져있는 조각에 눈을 맞추며 색의 조화를 고민하며 조각을 맞추었다. 


 바느질을 하다 보면 딴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오직 그 작업에만 집중해야 바늘땀이 고르게 된다. 그렇게 두 달 동안 바느질을 해서 완성한 모시조각보를 빈방에 걸어두었다. 가구가 하나도 없는 텅 빈방에 모시조각보를 걸어놓으니 정갈한 이미지의 아늑함이 생겨났다. 빈방이 주는 허함과 고요 속에 마음의 여유가 비집고 들어섰다. 조각보 하나로 공간이 주는 느낌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배웠다. 


 볕이 좋은 날에는 빛을 통해 비치는 조각보의 색이 또 다른 모습을 띤다. 낮과 밤의 깊이에 따라 조각보의 색은 날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한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창문을 조금 열어 두기도 했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살랑거리는 조각보를 바라볼 때면 그동안 고생한 모든 시간을 다 위로받는 듯 팍팍한 내 마음에도 따뜻한 온기가 흘렀다. 시간이 더 지나면 모시에 물들인 색이 바래가며 세월의 흔적도 쌓이겠지, 그러면 공간의 느낌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하다. 


 그 느낌이 좋아서 나는 하루 한 번쯤은 텅 빈방에 들어가 물끄러미 모시조각보를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면 자꾸만 주저앉으려 하던 내게 천연염색과 바느질을 가르쳐준 친구 생각도 나고, 나들이하듯 오가며 보았던 양평의 풍경들도 그림처럼 생각이 난다. 또 어떤 날은 그 방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간 오래된 친구들, 가끔씩 불쑥 찾아와 며칠씩 머물며 늦잠을 자며 생활에 지친 피로를 풀다가는 딸아이, 여름 내내 그 방에 머물다 가신 어머니 생각도 난다. 빈방이지만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이 공간이 참 좋다. 텅 빈 방에 들어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이곳은 힐링의 공간이다.      


 나에게 글쓰기도 이와 같지 않을까? 지나온 삶의 크고 작은 경험치를 바탕으로 기억들을 소환해 가며 이야기를 만든다. 때로는 미련 없이 잘라내기도 하고 새로이 덧붙이기도 하고, 조각조각으로 나누기도 하면서 깊은 시간을 들여 글을 쓴다.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오가며 고심했던 문장들이 바스락거리며 생명을 갖고 태어난다. 나에게 그런 시간들은 살아있음을 뿌듯이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작업은 맨몸으로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이것저것 꾸미지 않아도 되고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간이다. 온종일 무언가에 휩쓸리듯 정신없이 살아온 시간들을 되돌아봄 일 수도 있고, 놓치고 지나간 잘못에 대한 반성일 수도, 다짐일 수도 있다. 나는 인생을 잘 살고 싶었다. 진중하고 행복하게, 그런데 삶이라는 것이 자꾸만 꺾인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는 변수들 앞에서 좌절하고, 주저앉으려 할 때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이 글쓰기였다. 


 좋은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그냥 자연스럽게 마음이 그리로 향한다. 그러다 보면 좀 더 친해지고, 편안하고 좋은 마음이면 글도 안정감이 있다. 익명의 누군가에게 막막하고 힘들 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고 쓰인 글을 다시 고쳐가는 과정 속에서 내가 먼저 행복해진다. 긴 시간을 들여 조각을 맞추고 바느질을 하는 것과 이야기를 촘촘히 엮어가는 것 또한 같은 이치이다.   


 오늘은 빈방에 홍시처럼 말간 붉은 노을이 들어와 조각보를 비추었다. 그 색이 너무 황홀해서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하루 동안의 노곤했던 마음에 빗장이 풀렸다. 삶의 위안이라는 이런 것이었구나. 닮은듯하지만 사실은 매일 다른 시간들, 그 속에서 나는 가끔 이렇게 달란트 같은 상황을 만나면 행복해진다. 


 글은 지나온 시간만큼의 깊이를 갖는다. 인생도 이러하겠지. 나이를 먹고 시간의 무게를 견디다 보면 겹겹이 쌓아 올린 삶의 깊이도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지나고 나면  더 자세히 보인다는 말을 이제는 알아차릴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간다. 아마 나는 내일도 그 방을 서성일 것이고, 늦은 오후쯤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이다. 오늘도 이렇게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곰삭아진 마음에 불뚝 불뚝 성을 내는 일도 점차 줄어드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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