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색에 무르익은 커피구름색
17년 동안 자유로를 통해 서울로 출퇴근을 했다. 평일 출근 시간에는 항상 정체 구간이 있어서 차가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지루하게 진행을 한다. 이럴 때 차 안에서 사진을 찍다 보면 매번 같은 풍경인데 날마다 다르게 찍힌다. 언뜻 보면 닮은듯하지만, 사실은 매일 다른 시간의 기록이다. 나는 그 속에서 조금씩 변해가며 살아왔다.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 여기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그저 오고 가는 인연 따라 이런저런 모양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삶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라는 것은 땡볕의 후끈한 열기를 감당하기 버겁다 싶은 여름날, 후드득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꼭 맞춘 듯 들어서기도 하고 맹숭맹숭하게 심심한 우연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어떤 날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훅 들어오는 인연도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끼리, 별로 친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을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듬성듬성 알고 지냈던 적이 있다. 공식적인 모임은 한 해에 2번 정도, 그마저도 어떤 해에는 12월에 한번 송년회를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항상 모임 끝에서 하는 말, 내년에는 더 자주 봅시다. 그러나 이 말은 17년 동안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말들을 참으로 살갑게 했다. 다음에는 술 한 잔 진하게 하며 신나게 놀자고, 해외여행 한번 가지고, 그러나 이 약속은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무심한 듯 각자 살다가 일 년에 딱 하루 어색한 모임을 하고 습관처럼 다음을 기약했다. 아름회,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 총인원이 5명이고 1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회장을 했다. 회장이라야 뭐 별거 없다. 서로의 일정을 조율해서 약속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그날의 회계까지 한 사람이 심플하게 했다. 이 모임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모두들 그냥 그렇다고 하면서도 모임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듬성듬성 오래 봅시다.라는 말이 모임의 신조였다.
시작은 항상 인사동 주점이었으나 아무도 취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날의 이야깃거리에 귀 기울여 싱거운 농담에 맞장구치며 환하게 웃었다. 서로 비교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 무엇보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밑바탕에 짙게 깔려있어서 모임은 안정감과 평화가 있었다. 그런데 퇴사를 하면서 모임을 그만두었다. 내 직장생활과 연관된 사람들 이어서였는지 내 마음은 딱 거기까지였다. 가끔 이 모임이 생각나곤 한다. 그립다기보다는 그런 형식의 만남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인연은 함부로 내치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얼마 전 이모임의 한분이 딸아이 시집간다는 청첩장을 보내왔다. 달력에 표시를 해놓고 이참에 다시 모임에 나가 인사라도 드려야지 했는데 코로나에 걸려 결혼식날을 깜빡하고 놓쳐 버렸다. 뒤늦게 전화를 드릴까 고민하다가 날짜가 너무 지나서 미안한 마음에 한참을 망설이다 그냥 뭉개고 말았다.
살면서 때때로 크고 작은 인연들에 즐거워하고 혹은 어색해했다. 또는 잘못 이어진 관계로 힘들 때도 있었다. 이런 날들에 또 다른 하루를 덧대어 가며 사는 세월이 혼곤해질 때도 있었다. 인연에 따라 곁가지가 중심축 대신에 삶을 지탱하고 있을 때도 있었고 그 곁가지가 무거워 슬그머니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다. 이기적 이게도 순간순간 변하는 마음 따라 인연의 깊이도 더했다 덜 했다를 반복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큰 축을 이루고 있고 친구, 선후배들이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는 작은 인연도 있고 일상에서 매일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짧은 인연들까지 관계의 인드라망 구조에서 나는 어떤 조각으로 쓰이고 있을까. 혹여 정교한 구조를 망가뜨리지는 않았었는지 모르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가볍지 않게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게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