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색전
평소보다 1시간 정도 뒤늦은 출근, 밤새 치통에 시달리다 병원에 다녀오느라 늦었다는 빤한 이유를 둘러대고 자리에 앉았다. 김 군이 다니는 회사는 공작기계를 제작하는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회사였다. 사장이 서비스 마인드 보다 세일즈 마인드를 우선으로 하고 있어 고객과의 마찰이 잦았다.
책상 위에는 몇 건의 전화메모가 적혀있었다. 명성에서 스케일 견적서를 요청하는 건과 이미 납품된 NC 서비스 요청 건이 수두룩 했다.
관리팀 소속인 김 군은 우선 전날 작업하던 파일을 찾아 기존의 가격보다 한 단계씩 다운하여 무난한 수준의 견적서를 마무리해서 결제를 받아 명성인프라코어 박 부장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서비스팀 서 과장에게 AS 목록을 정리해서 넘기고 나니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아침도 걸렀는데 점심시간이 되었어도 시장기를 느끼지 못했다.
오전 내내 지독한 고양이똥 냄새에 시달렸던 탓인지 입안은 소태를 씹은 듯 까끌까끌 거려 도무지 밥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식사를 하러 가자는 동료들에게 오전에 잇몸이 부어 치과에 다녀왔다는 거짓말을 확인시키듯 이가 아파 밥을 먹을 수 없다고 둘러대고 복도에 나가 자판기 커피 한잔을 뽑아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동료들이 주섬주섬 사무실을 빠져나간 텅 빈 사무실에서 느끼하면서도 들치근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가 김 군은 문뜩 아침에 황당했던 기억이 떠오르니 다시 화가 치밀어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이 새끼들 어떻게 복수를 하지?'
터질 듯 부풀어버린 성질을 짓누르며 고양이에 관한 인터넷 웹 검색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자료들이 올라와 있었다.
고양이 용품을 파는 사이트부터 고양이 사료, 고양이 모래 등등 그런데 고양이똥 커피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이게 뭔 소린가 고양이똥을 어떻게 커피로 만들어? 인도네시아 커피 농장 주변에 야생 사향고양이가 산다. 이들은 밤에 몰래 커피나무에 올라가서 잘 익고 냄새 좋은 커피 원두를 따 먹는다. 이 커피 열매가 채 소화되지 않은 채 다시 나온다. 일명 고양이 똥 커피(코피루왁), 이 사향고양이가 최고의 커피 제조기인 샘이다. 코피루왁은 한잔에 약 5만 원으로 일반 커피에서 나는 쓴 맛이 없고 카페인이 적어서 약간 순한 맛이지만 향기가 기가 막히다.
'미친놈들,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구나, 마시고 나면 입에서 '비 오는 날 들판에서 나는 신선한 흙냄새'가 남는다고?” 웃기고 있네 내장 속에서부터 헛구역질이 날만큼 지독한 고양이똥 냄새를 맡아봐야 이런 사치스러운 짓을 안 하지, 물론 우리 집 마당에 똥 싸질러 놓는 고양이 놈들 하고는 종이 다르겠지만 결국은 같은 과의 동물 아니겠어?'
김 군은 아침의 기억에 곧추선 닭 벼슬처럼 우글우글 부풀어 끓어오르는 화를 참아내고 다시 다른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특성은 모래 위나 흙이 있는 마당에 똥을 잘 싼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한번 변을 본 다음에는 계속 같은 장소에서 변을 본다.
어떤 고양이가 대변을 묻지 않는다면 무리에서 서열이 가장 높아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할 가능성이 크다.
고양이의 배설물은 강아지의 배설물 보다 몇 배는 더 지독하므로 자신의 냄새를 더 확실하게 맡을 수 있으며 이른바 영물이라고 불리는 이 동물은 깨끗한 척 깔끔을 떠는데 똥을 싸고 그 위에 모래를 덮는 습성이 있다.
요즘 같이 거리에서 흙을 찾아보기 힘든 경우 마당에 흙이 있는 집이라면 당연히 고양이 배변 장소의 최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고양이 똥 퇴치법은 과학적인 근거는 알려진 바 없으나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몇 가지 처방법이 있다. 고양이는 레몬이나 식초 같은 시큼한 냄새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잔디 위에 레몬조각을 잘라 놓거나 식초를 뿌려주면 고양이 똥 냄새가 희석되는 효과가 있어 놈들이 아리 까리 한 상태에서 자신의 배변 위치를 인지 못할 수도 있다. 또는 잔디 위에 압정을 뿌려 놓아 발을 찔려 놀라서 다시는 못 오게 한다, 쿠킹포일을 깔아 놓는다, 석류나무 가지에 가시가 있으므로 가지를 잘라 뿌려 놓는다, 애견 탈취제를 뿌려놓는다. 모기향을 피워 놓는다. 마당에 개를 풀어놓는다 등등 여러 가지 방법들이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을 사용해서 크게 효과를 봤다는 내용을 별로 없고 그냥 별 수 없이
매. 일. 치. 운. 다.
뒤처리는 비닐봉지에 담에 꽁꽁 묶어 냄새가 나지 않게 해서 청소봉투에 버리는 수밖에 없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냄새로 치자면 사람 똥, 개똥 보다 일순이가 고양이 똥인데 어떻게 그 냄새를 매일 맡아 내냐고, 하긴 엄마는 “에고 또 싸놨네” 하면서 일삼아 습관적으로, 별 불평 없이 치우고 계셨다.
자료를 찾는 동안 잠자고 있었던 삶에 대한 욕구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춤을 추고 있었다. 직장 생활도 그렇고 남들처럼 특별히 즐기는 취미도 없고 이미 친구들은 결혼해서 2세까지 보았을 시기인데 아직 여자 친구도 없는 37살 노총각 K의 머릿속에서 욕구가 생겨난 것이다. 마치 매일매일 어제와 같은 오늘이 되풀이되고 있던 지루한 일상에 쥐꼬리 만한 흥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김 군은 이쯤에서 고양이 똥과의 전쟁을 결심했다.
"내 기필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놈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리라, 두고 보자 으하하하 "
니코틴으로 누렇게 변색된 앞니 사이로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