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군과 고양이(6)

살다보니 이런일을

by 푸른고래

아침에 고양이 똥을 확인하느라 늦잠을 자지 않은 탓에 어제보다는 한결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전날과 다르게 느긋하게 버스정류장에서 7시 30분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 진행 경과를 알려주는 전광판에 108번 버스가 전전 정류장을 통과하였다고 빨간 불빛점자로 알려주고 있었다.


"타이밍 좋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이런 타이밍의 문자를 확인하면 기분이 좋다. 우선은 버스를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좋고 가끔씩 이런 날이면 운 좋게도 버스에 빈자리가 점점이 남아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 군이 이렇게 여유로운 기분에 빠져들 때쯤 30미터 떨어진 횡단보도 앞에 108번 버스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횡단보도의 초록색 점멸등이 사라지자 버스가 K앞으로 스르르 밀려들어왔다.

어제처럼 허겁지겁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맨 앞줄에서 첫 번째로 여유 있게 버스에 오르며 버스 안을 휘 둘러보았다.

혹여 빈자리라도 있을까 하는 기대로 하지만 버스는 이미 만원이어서 몇 명이 통로에 서 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김 군은 맨 뒤에 좌석 끝 쪽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출입문 앞에 서면 아무래도 안정감이 없이 불편했다. 그래서 서 있어도 김 군은 항상 버스 뒤쪽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뒤에서 두 번째쯤에 자리를 잡고 의자 등받이 귀퉁이에 등을 기대어 섰다. 버스가 강변으로 들어서자 한강변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와 달리 강변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그 안개 사이사이로 잔물결의 어울림이 마치 흰색과 검은색을 적당히 뭉개어 놓아 희끄무레하게 머리가 허옇게 세어가고 있는 중년의 뒷모습처럼 일렁였다. 마치 작은 붓으로 수많은 터치를 덧대어 겹쳐놓은 듯 안개와 강물의 경계가 뒤범벅이 되어 여유롭게 시작했던 아침의 평온한 기분을 희석시키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K가 강물과 무언의 씨름을 하고 있을 즈음 옆에서 키득키득 대며 소근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남자 어제 똥 밟았던 사람 아니야? 맞지?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맞다 맞아 그 사람이다. 근데 저 사람 배짱도 좋다.

아침마다 이 시간대에 타는 사람들 대부분이 같은 사람인데 자기를 못 알아볼 줄 알았나 보지 암튼 웃긴다. 나 같으면 당분간 같은 버스는 못 탓을 거야, 근데 신발은 버렸을까? 찜찜해서 못 신을 것 같아,

어제 얼마나 지독했냐?” “그래 맞아 똥냄새치곤 무지하게 독했지, 그런데 그게 무슨 똥이었을까?”

“사람똥 냄새는 아닌 것 같던데 혹시 개똥이나 뭐 고양이똥 아닐까? 요즘 우리 동네에 도둑고양이들이 득실거리거든.”

"얘 그만하자, 저 사람 보니까 또 냄새가 나는 것 같아” “

나는 어제 버스에서 내리고도 점심때까지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니까.”

“나도 속이 울렁거려서 소화제까지 사 먹었었어”


비록 작은 소리였지만 낮게 속삭이는 소리는 조용한 버스 안에서 조금만 귀 기울여 들으면 분명히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아침 출근시간대에는 버스 운전사가 라디오를 틀지 않는다. 잠이 부족한 직장인들이다 보니 좌석에 머리를 대고 앉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을 자기 때문에 그건 일종의 암묵적인 배려였다. 내가 이들의 속닥거림을 들었으니 그 주변의 다른 사람들 몇몇도 잠이 들지 않았으면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김 군은 짐짓 못 들은척하며 이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또다시 전날의 기억에서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김 군은 혹여 이들과 눈이라도 마주칠세라 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리던 핸드폰을 꺼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의 볼륨을 올렸다. 민망해서 마땅히 시선 둘 곳이 없어 창밖으로 길게 이어지는 강물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라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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