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군과 고양이(7)

흔들리는 마음

by 푸른고래

어제와 오늘 아침 출근길에 겪은 스트레스를 빌미로 저녁회식자리에서 평소보다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 소맥, 일명 소주와 맥주를 반반으로 섞어 젓가락으로 회오리를 만들어 권하는 대로 거푸 여러 잔을 마셔댄 탓에 취기가 올라 비틀거리며 마당을 들어섰다. 순간 발밑에 물컹거리는 무언가가 밟혔다.


순간 “에이 씨 이 새끼들 어디 숨었어?


하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캄캄한 허공을 향해 김 군의 외마디 욕지거리가 날카롭게 끼어들어 어둠 속을 헤집고 다녔다. 갈지자로 뒤엉켜 비틀거리며 현관 계단을 오르는 사이 고양이 똥 덩어리들이 발자국을 따라 계단에 낭자함과 동시에 고양이 똥 냄새가 오롯이 기어올라 왔다.


그 냄새를 맡자마자 욱 하고 속에서 뜨거운 토사물이 흘러나왔다. 저녁에 안주로 먹은 삼겹살과 소맥이 위 속에서 삭다 말은 시큼 떨떠름한 냄새까지 뒤엉켜 순식간에 현관 앞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밖의 소란스러움에 잠이 깬 엄마가 무슨 일인가 하고 계단에 불을 켜고 현관문을 열자 기가 막힌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놈이 비틀비틀 대며 계단 난간을 붙잡고 엉덩이를 길게 빼고 왝왝거리며 토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아들은 고양이에게 악다구니를 쏟아내며 무어라 주절거리고 있었다. 그 곁에서 지독한 고양이 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이튿날 새벽 머리가 깨질 듯 아파 눈을 떴다 어젯밤의 과음 탓인지 속도 쓰리고 입안이 텁텁하고 누린내가 낀 것처럼 고약한 악취가 났다. 간밤의 끊어진 기억을 주섬주섬 끼워 맞추려 생각을 더듬어 보니 사무실 근처에서 술을 마신 후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내렸고 현관 앞에서 고양이 똥을 밟은 것과 토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에는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그대로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곯아떨어진 것 같다. 와이셔츠는 밤새 입고 잔 채로 구겨져 있고 앞단추는 떨어져 나가고 침대바닥에는 양복저고리와 바지가 제멋대로 뒹굴어 있고 넥타이는 문고리에 걸려 있었다.

그 와중에도 넥타이를 걸어 논 것을 보고는 피식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또다시 머리가 깨질 듯 두통이 몰려들었다. 정신도 차릴 겸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가서 샤워꼭지를 틀고 한동안 뜨거운 물을 맞고 있으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멀거니 물줄기를 맞고 있다가 무슨 생각이나 난 듯 서둘러 샤워를 하고 주섬주섬 운동복을 걸쳐 입고 현관으로 나왔다.


아직 아침이 오기 전 새벽녘의 대문 앞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이 맴을 돌고 있었다. 아마도 엄마가 어젯밤 물청소를 해 놓으신 듯 현관 앞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김 군은 마당 앞 잔디 위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똥을 싼 자리는 거의 매일 같은자리였다.


김 군은 고개를 숙여 킁킁거리며 아직 새벽이슬이 남아있는 잔디 위의 냄새를 맡아보았으나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이틀 전에 뿌려놓았던 식초냄새도 고양이똥 냄새도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K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일어날 무렵 오토바이 한 대가 집 앞에 와서 멈추더니 젊은 청년하나가 신문을 디밀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근데 바닥에 뭐가 있어요? 아니요 그냥 좀…….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어 머슬머슬한 듯 머뭇거리는 사이 청년은 어느새 오토바이를 타고 다른 집 대문으로 신문을 던지고 있었다.

김 군은 받아 든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사이 엄마는 일찌감치 북어 국을 끓이고 계셨다. 다른 기억력은 조금씩 소멸해 가고 있지만 자신이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항상 북어 국을 끓이셨다. 이것이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인가 싶어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제는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냐?”


“회식이 있었어요, 그냥 기분 좋게 마시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근데 어젯밤에 제가 방에는 어떻게 들어갔어요?”

“아무 기억도 없냐?”


“아니 뭐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도 없고 ”


“현관 앞에서 신발 한 짝씩 벗어 마당으로 던지더니 비틀거리며 올라가서 그냥 고꾸라졌어, 너 때문에 한밤중에 계단 청소하느라 욕 받다. 냄새는 왜 그렇게 독하고 비린지 세제를 풀어 청소를 했는데 잔디가 죽을까 봐 걱정이다. 도대체 나이가 몇 살인데 여태껏 그려 정신 좀 차려 언제까지 어미가 네 뒤치다꺼리나 혀고 살아야 하냐? 손자는 고사하고 며느리가 해주는 밥 한번 먹어 보는 게 소원이구만, 에고 내 팔자야.”


김 군은 계속되는 엄마의 지청구를 무지르고 말을 자를 속셈으로


“북어 국 다 됐어요?


“잔소리 듣기 싫다 이거지? 그려 나도 나이 먹은 아들놈 앉혀놓고 이른 아침부터 소리 내기 싫다. 국은 아직 안 됐다. 10분만 더 끓으면 네가 퍼 먹으렴.”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시다가 “날 파 썰어놨으니까 한 수저 넣고 고춧가루 조금 풀어먹어 그래야 속이 풀리지.”


거실에서 신문을 뒤적거리다 뽀얗게 국물이 우러난 북어 국을 한 대접 가득 떠서 날 파를 한 수저 넣고 고춧가루를 조금 풀은 다음 휘휘 불어가며 국물을 마셨다.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니 시원하니 마구잡이로 엉켜있던 속이 좀 시원하게 풀리는 듯했다.


'이담에 장가가면 엄마가 끓여주신 이 맛이 많이 생각날 거야.'


입안이 까끌까끌 거려서 밥은 먹지 못하고 국물만 한 대접을 다 비우고 나니 땀이 삐질삐질 나면서 간밤의 숙취에서 좀 벗어나는 듯했다. 평소 같으면 아직도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시간이었는데 일찍 잠이 깨다 보니 휴일 아침의 나른한 늘어짐을 그대로 반납한 기분이 들어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주말이라고 해봐야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어제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친구를 만나기도 귀찮고, 하긴 뭐 불러내도 마누라 눈치들 보느라 선뜻 튀어나올 친구도 없었다. 방으로 올라와 다시 밀린 잠이라도 청할 겸 침대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하지만 잠은 안 오고 멀뚱멀뚱 천장만 쳐다보다가 어젯밤에 밟았던 고양이 똥 생각에 컴퓨터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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