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새, 그리고 남겨진 관계

동백과 바나나, 관계의 다른 결말

by 루인

겨울 하면 떠오르는 꽃들 가운데,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동백꽃이다.

나는 예전에 수목원에서 일하던 시절, 이 꽃을 유독 좋아했다.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숲 한가운데서, 다른 꽃들이 모두 자취를 감춘 뒤에도

홀로 붉은빛을 품고 소담하게 피어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꽃을 찾아 내가 좋아하는 동박새가 자주 날아드는 광경을 보는 일이 좋았다.

그때는 그저 보기 좋은 풍경이라 여겼을 뿐, 그 관계가 왜 가능한지까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동박새, Photo by Nolla

어떤 날에는 동백이 먼저 피어 있었고, 그 아래를 오가는 동박새의 모습이 유난히 잦았다.

또 어떤 날에는 꽃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새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동박새가 오지 않는 날에도 동백은 피어 있었고, 꽃이 지고 난 뒤에야 새가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 장면들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그 관계가 언제나 자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백과 동박새의 만남은 약속된 결과라기보다,

같은 계절과 공간에 남아 있던 존재들이 우연히 겹쳐지는 순간에 가까웠다.


동백은 가까이 다가가도 향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꽃 속에는 많은 꽃가루와 꿀이 들어 있고, 그 붉은빛은 겨울 숲에서도 멀리서 눈에 띈다.


시간이 지나며, 이런 모습들이 우연히 모여 만들어진 장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에 피는 꽃과 겨울에도 먹이를 찾아야 하는 작은 새가 같은 공간에 남아 있었고,

그 겹침 속에서 하나의 관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관계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 지속성이 언제나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동백은 해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자리에 꽃을 피우지만, 동박새의 움직임은 훨씬 유동적이다.


어떤 해에는 꽃이 한창일 때 새가 찾아오고,

또 어떤 해에는 개화가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새의 방문은 꽃의 의지로 통제되는 것이 아니고, 꽃 역시 새의 선택을 요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는 매년 다시 성립된다. 그것은 서로를 향한 목적 때문이 아니라,

같은 계절을 견디는 방식이 우연히 겹쳐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와 꽃이 맺는 관계를 조매화라고 부른다.

곤충 대신 새의 방문에 기대어 꽃가루가 옮겨지는 꽃들이다.

대체로 붉은빛을 띠고 향기는 약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모습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 계획된 것처럼 보이기보다는,

특정한 환경 속에서 이어져 온 관계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가 언제까지나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바나나 역시 한때는 새나 박쥐가 꽃가루를 옮기던 식물이었다.

크고 단단한 꽃차례와 풍부한 꿀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지만, 인간의 개입으로 바나나는 씨를 잃었다.

더 이상 자연적인 수분을 기다리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삶을 택한 셈이다.


바나나에서 인간은 수분자라기보다, 관계 전체를 대신 설계하는 존재에 가깝다.

꽃가루를 옮기는 대신 번식의 방식을 결정하고, 씨가 사라진 자리를 클론번식으로 채운다.

자연 속에서라면 이어질 수 없었을 계통이 인간의 개입 덕분에 유지되고 확산된다.


이제 바나나는 더 이상 새를 기다릴 필요도, 계절에 맞춰 관계를 조율할 필요도 없다.

조매화였던 식물은 여전히 조매화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그 관계는 다른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꽃과 새 사이에 남아 있던 빈자리를, 인간이 조용히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동백과 동박새, 그리고 바나나를 나란히 놓고 보면

조매화라는 말이 단순한 분류 용어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꽃과 어떤 존재가 맺어온 관계의 기록에 가깝다.


어떤 식물은 여전히 그 관계 속에 남아 있고, 어떤 식물은 환경의 변화 속에서 그 관계를 떠났다.

꽃의 색과 형태에는 한때 필요했던 상대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 관계가 반드시 현재진행형일 필요는 없다.


조매화는 그래서 ‘누구에게 꽃가루를 맡기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식물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와 연결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흔적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 관계를 이름으로만 부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한때 서로를 필요로 했던 시간의 층위가 겹겹이 남아 있다.


식물의 형태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식물이 살아온 관계의 방향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과 닮아 있다.

어떤 꽃은 여전히 특정한 존재를 기다리고, 어떤 꽃은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는 삶을 선택했다.


그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놓였던 환경과 연결의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에 가깝다.

그래서 조매화라는 말은 고정된 범주라기보다,

관계가 만들어지고 변해온 흔적을 잠시 묶어 부르는 이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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