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장님이 40대에 회사원이 되었다. ㅡ3
마지막 식사
이른 아침, 병실 창가에 눈부신 햇살이 내려앉는다.
아침 7시 ,
"똑똑똑"
식사 배식시간이었다.
며칠 전부터 아버님은 아예 드시질 못하고, 닝겔만 맞으셨다. 점점 더 앙상하게 말라가셨다.
"여기 식사 취소했는데요?"
식판을 들고 들어오시는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아~~ 다시 신청하셨다고 하던데요?"
아주머니는 나에게 식판을 건네주고 뒤돌아섰다.
아버님께서 손을 들어 손짓을 하신다.
얼른 아버님 곁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아가. 너라도 잘 먹어야지. 나가서 밥 먹고 오라고 해도 말도 안듣고. 나는 조금 더 잘테니까 신경쓰지 말고, 어여 밥 먹어라."
아버님께서 기력이 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오전 9시,
아버님께서 또 다시 손짓을 하셨다.
"이거 받아라. 내가 누워 있는 신세라 가진게 이거 뿐이란다. 옷이라도 한 벌 사입어라. 내가 너한테는 참 미안하고, 고맙다."
하얀 봉투를 내밀며 말씀하셨다.
한사코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끝내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니?이제 내 며느리 될 사람인데, 마음 같아서는 뭔들 못주겠니?"
"손주는 못 보더라도 니들 결혼식만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다 틀린 것 같구나. 하긴 이 꼴로 참석하는 것도 우습지.휴~~"
아버님의 깊은 한숨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봉투 안에는 10만원이 들어 있었다. 25년전의 일이었으니, 제법 큰 돈이었다.
나는 한참동안 돈을 쓰지 못하고, 봉투채로 보관했다.
어느 날 아침,
밤새 피곤한 몸으로 뒤척이셨을 어머님이 떠올랐다. 하루종일 장사에 시달리셨을텐데, 꼭 병실에서 주무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남편과 함께 어머니께 드릴 김밥을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아버님 곁을 지키고 싶은 그 마음이 헤아려졌다.
남편과 함께 병실로 간 나는 어머니와 도시락을 열어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도시락이 바닥을 보일때쯤, 며칠동안 쭉 침대에 누워 잠만 주무시던 아버님께서 벌떡 일어나셨다.
"너희들만 김밥 먹냐? 나도 김밥 먹고 싶어."
제대로 의식도 없으시고, 닝겔에 의존해서 누워만 계셨는데.
당연히 김밥 같은 건 못 드실 줄 알았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일어났다.
아차! 싶었다.
남편과 함께 병원 근처를 샅샅이 뒤져 김밥을 포장해 왔다.
"아버님. 죄송해요. 저희끼리만 먹어서..."
어쩔 수 없이 사온 김밥을 드리긴 했지만, 너무 죄송했다.
아버님은 딱 두 개의 김밥을 드시고 바로 누우셨다.
김밥은 아버님께서 이승에서 드신 마지막 식사였다.
나에게 김밥은 슬픈 추억의 음식이다.
어머니께서 시장에 장사를 나가시고, 병실 안에 적막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 후로 서너 시간동안 아버님은 주무시기만 하셨다.
딱 한 번 눈을 뜨시더니,
"너도 그만 누워서 쉬거라. 너무 애쓸 거 없다."
라고 말씀하셨다.
오후 4시쯤 침대에서 일어나신 아버님의 행동이 이상했다.
전혀 사리분별을 못하시고,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순간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간호사를 호출하고,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어머니. 아무래도 아버님이 좀 이상해요... "
그 한 마디에 어머니는 직감하신 것 같았다.
이제 아버님을 보내드려야 할 때가 왔다고.
5층 복도 맨 끝 병실 안,
어머니와 삼형제 그리고 내가 아버님 앞에 서 있다.
"아무래도 오늘을 넘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가족분들 모두 마음의 준비하세요."
침울한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가자. 편하고 익숙한 곳에서 보내드리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급히 구급차로 아버님을 모시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해서 이부자리를 펴고, 아버님을 눕혀 드렸다.
그 후로 30분이 지나,
아버님은 조용히 떠나셨다.
단 한 마디의 유언도 없었지만, 눈을 감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남편이 슬며시 아버님의 눈을 감겨드렸다.
20살에 만난 아버님, 짧은 만남이었지만 애틋했고, 각별했다.
언제라도 좋으니, 꿈에라도 한번 나타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