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장님이 40대에 회사원이 되었다.ㅡ 4

사람을 얻는 일

by 청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집에서 장례식을 치뤘다.

1998년 음력 6월 25일이었다. 한여름이라 2일장을 치르기로 하고, 대문 밖 길가까지 천막을 치고 조문객을 맞이했다.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동,

아버님의 사망소식을 듣고 동네 어르신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일사천리로 장례식 준비를 진행하셨다.

동네 아주머니들께서는 삼삼오오 둘러 앉아 전을 부치고,음식을 준비했다.

뜨거운 불볕 더위에 전을 부치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그때는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틀동안 그 많은 조문객들이 드실 음식을 마련하셨다.


"**가 참 잘 살다 갔네. 이렇게 동네에서 발벗고 내 일처럼 나서주니 말이야."

통장 아저씨께서 말씀하셨다.

"내다 판다고 온갖 채소는 다 키워서 이 집 저 집 다 퍼주고 그랬잖아. "

"형편이 어려워서 집세 못내는 친구들한테 돈도 빌려주고. 아무튼 사람 하나는 참 좋았어."

여기 저기서 아버님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집 앞으로 조문객들이 장사진을 이뤘고, 가끔 골목으로 들어서는 차들은 아무 이의없이 되돌아 나갔다.


이틀이 지나고, 이른 아침

행여를 매겠다고 동네 청년들이 몰려왔다.

우리는 경황이 없었고,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장례식을 동네 사람들이 내일처럼 앞장 서서 치르고 있었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행여를 맨 동네 사람들과 우리는 남편의 할아버지를 모신 야산으로 향했다. 논산시 연산면에 위치한 산이었다.

알록달록 화사한 꽃들로 장식된 행여를 바라보며

편히 잘 가시라고,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평안하시라고 몇번이나 되내였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다.

우리를 본 목사님과 교회 관계자들이 달려나왔다.

교회 앞으로 행여가 지나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통장 아저씨께서 나서서 정중하게 부탁도 하고, 동네 사람들이 항의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다.

도대체 교회 앞으로 왜 행여가 지나갈 수 없는지, 명확한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막무가내였다.

다짜고짜 막무가내인 사람에게는 방도가 없다.

더군다나 아버님이 가시는 마지막 길에 더이상 불미스러운 일이 없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다른 길로 빙 돌아 산으로 올라갔다.

더 멀고, 험한 길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멀고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해줬다.

묘자리에 도착해 조심스럽게 행여를 내려놓고, 구덩이를 파기 시작한다.

여러 개의 삽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머지 않아 땅 속에 관을 묻었다.

남편의 고모님들은 오열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애써 눈물을 참고 마지막까지 아버님을 배웅했다.

어머니는 참 강한 분이셨다.


아직 결혼식 전이었다.

하지만, 나는 생애 처음으로 상복을 입고 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나의 장례식 풍경을 상상해 본다.

나를 알았던 많은 사람들이 잘 살아냈다고, 그리울거라고 말해줄까?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줄까?

먼 훗날 한 순간이라도 나를 기억해 줄까?

한 생을 살아내고 가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버님의 장례식,

한 생을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을 얻는 일'이라고 먼 길을 떠나는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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