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장님이 40대에 회사원이 되었다.ㅡ 5
그 치열한 이야기의 시작
장례식을 치르고, 어머니는 아버님의 옷과 물건들을 하나 하나 정리하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셨던 것일까?
우리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셨던 것일까?
어머니께서는 며칠이 지나 다시 장사를 시작하셨다.
전에는 대전 외곽에 있는 밭에 농사를 지어 채소를 내다 팔으셨다. 노점이었지만, 싱싱한 채소를 저렴하게 판다는 입소문 덕에 장사는 잘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제 농사지을 밭이 없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그 밭을 매매하셨고, 그 돈은 그동안의 병원비로 인한 빚을 갚는데 쓰여졌다.
어머니께서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농수산물시장에서 도매로 채소를 사오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남편과 나에게 장사를 같이 해보자고 권유하셨다. 마침 어머니께서 노점을 하고 계신 자리 뒤편에 위치한 신발가게가 매물로 나왔다.
가게 앞에서 채소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신 신발가게 주인 부부는 먼저 우리에게 가게를 매입하라고 말씀하셨다. 참 선하고 좋은 분들이셨다.
1998년 당시 작은 평수의 가게였지만, 5000만원에 신발가게를 매입했다.
어머니께서는 셋이 열심히 노력하면 잘 될거라며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으셨다.
어머니는 참 강단있고, 추진력 있으신 분이다.
매입한 신발가게를 대청소하고, 페인트도 새로 칠했다.
남편과 동대문시장에 가서 새로 물건도 들여왔다.
신발가게 앞 우측으로 진열장을 만들어 신발을 진열했고, 좌측으로 채소를 판매할 낮은 진열대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안어울리는 조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우리가게를 찾는 단골손님들이 늘어났다.
남편이 채소배달을 시작한다는 전단지를 만들어 틈나는대로 아파트단지와 식당가를 돌며 홍보했다.
전단지 효과인지 가게 전화기 벨이 울리는 횟수가 늘었고,
점점 매출이 상승했다.
근처에는 사립대학과 아파트단지가 있다.
매일 매일 고정으로 채소를 구입하고, 전화주문을 하는 식당들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건어물까지 품목을 늘렸고, 김치와 반찬을 만들어 판매했다. 어머니는 음식솜씨가 좋으셨다.
수요자가 많으니, 요구사항도 많아졌다.
고객들의 요구사항에 최대한 귀를 기울였고, 그 덕에 날로 매출이 증가했다.
채소를 사러 온 손님들이 신발구경을 하면서 신발을 사고, 신발을 사러 온 손님들이 필요한 채소를 구입했다.
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나.
우리는 한 집에 살고, 한 가게에서 함께 장사를 한다.
새벽 4시에 불이 켜지고, 다시 밤 10시가 넘어야 불이 켜진다.
때때로 김장철이나 명절때는 자정이 넘어서 현관문에 들어선다.
집에 불이 켜져있는 시간보다 꺼져있는 시간이 많았던 나의 20대 시절,
그 치열한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