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장님이 40대에 회사원이 되었다. - 7

사장님보다 새댁이 좋아요.

by 청비

우리가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하고, 서서히 자리를 잡아갈 무렵 그동안 미루었던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소식이 뜸하던 친구들에게 괜히 잘 지내냐며 안부전화를 하다가 결혼소식을 전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결혼식 전날 우리 가게 단골인 호프집을 통째로 빌려 피로연을 했다. 그동안 친구들과 연락을 자주 하면서 살지 않았기에 썰렁한 피로연이 될까봐 내심 걱정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피로연과 결혼식에 참석을 했고,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혼식을 치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결혼식 전날 타지에서 대전으로 내려와 피로연에 참석을 하고, 숙소를 잡아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다음날 결혼식에 참석을 했다.

꼬박 이틀을 오롯이 나의 결혼식을 위해 시간을 내준 것이다.

그것도 연락이 뜸하던 나를 위해...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 친구가 많았고, 제법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은 글짓기 대회에 참가하는 나에게 글쓰기 연습을 시키면서 선생님 숙소에 머물게 했다.

학교 안 사택에서 생활하시는 선생님은 그때마다 감자를 갈아 맛있는 감자전을 해주셨다.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감자전의 고소한 맛을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잊을수가 없었다.

"네가 앞으로도 글쓰기를 지속했으면 좋겠고, 네 업이 되었으면 해. 세월이 지나서 어느 날 서점에 들려 우연히 네가 쓴 책을 발견한다면 선생님은 너무 기쁠 것 같아."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담임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었다.


인복이 많다는 건 이렇게 감사한 분들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갚아야 할 빚이 많다는 뜻이다.


20대로 접어들면서 글쓰기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버렸고, 오직 눈앞에 급급한 현실에 집중하고 매달렸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우리는 본격적으로 범위를 넓혀 장사를 려나갔다.

채소는 생물이라 하루가 지나면 시들어지면서 팔리지 않는 애물단지가 된다.

그래서 최소한의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저녁무렵이면 배추를 절이고 알타리를 다듬었다.

김치를 담가 팔면서 재고를 줄이고, 매출 상승효과를 린 전략이었다.

그 전략은 예상대로 반응이 좋았고, 손맛이 좋은 어머니덕에 김치를 주문하는 고객이 많아졌다.


배추나 알타리, 열무가 재고로 남아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김치를 담그는 일은 고된 작업이었고, 남편과 나는 재료손질과 절인 배추 씻는 일을 도맡아했다.

저녁무렵, 배추를 절이고 쪽파와 알타리를 다듬는다.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나는 옹기종기 둘러앉아 고객들에게 팔려나가지 못한 채소들을 업그레이드 시킨다.

김치로 업그레이드된 배추나 알타리들은 어김없이 팔려나갔고, 어떤 손님들은 소진된 김치통을 아쉬운 눈빛으로 들여다봤다.


장사의 흐름이 물흐르듯 더 큰물로 러나갔다.

매출은 점점 상승했고, 저녁무렵이면 앞치마가 무거워졌다.

그때만해도 주로 카드결제보다 현금결제가 많았다.


동네 채소가게 중에서 매출이 월등하게 뛰어난 가게라고 소문이 났고, 사람들은 우리집을 부잣집이라고 칭했다.

'이렇게 장사가 잘 되도 괜찮은건가'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살면서 돈을 제일 많이 벌어들이던 경제적 황금기같은 시절이었다.


"사장님, 배추 얼마에요?"

"사장님, 이 신발 275mm 사이즈 있어요?"

사람들이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시어머니도 사장님. 남편도 사장님. 나도 사장님.

우리 가게에 사장님이 셋이다.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낯설고 어색했다.

그러다 가끔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새댁!"이라고 불러주시면 난 그 호칭이 너무 좋았다.

마치 내 옷을 입은 것처럼 편했다.


"사장님!"

문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아직도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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