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장님이 40대에 회사원이 되었다.- 8

"커피 한 잔 드릴까요?"

by 청비

"커피 한 잔 드릴까요?"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게를 드나드는 동네 할머니들이 많았다.

폐지를 주워 파신 돈으로 생활하시는 **빌라 할머니, 임대업을 하시는 **상가 할머니, 뜨개질 솜씨가 좋으신 파란 대문집 할머니, 빨간 모자를 좋아하시는 멋쟁이 할머니.

특별히 살 물건이 없어도 가게에 들러 머물다 가시곤 하셨다.

종이컵에 뜨거운 믹스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셨다.

가끔은 제사에 참석하지 않고 여행간 며느리 흉도 보고, 용돈을 두둑하게 준 며느리 자랑도 하셨다.

할머니들은 우리가게를 드나들며 넋두리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좋은 소식을 들려주기도 했다.

손자가 장가를 간다는 소식, 손자며느리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

그렇게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짠한 외로움이 전해진다. '대화상대가 필요하셨구나.' 라는 생각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가게 때문에 참석은 못할 것 같아요. 손주 결혼식 축하드려요. 할머님."

며칠 전 대화 도중에 이번 주말에 손주 결혼식이라고 하셨던 **상가 할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축의금 봉투라도 전해드려야 마음이 편 것 같았다.

"이거 받아도 되는건지 모르겠네. 미안해서...지나가는 말이었는데, 어찌 기억을 다하고."

할머니는 선뜻 봉투를 받지 않으시고, 망설이셨다.

"저, 돈 잘 벌잖아요. 받으세요."

나는 농담까지 섞어가며 웃었다.


그 후로 **상가 할머니는 가게에 더 자주 들러 채소 다듬는 일까지 도와주셨다.

우리가게는 손질된 쪽파나 알타리들은 약간의 수공비를 포함해서 판매했다. 시간이 없거나 채소 다듬는 일을 귀찮아하는 고객들은 당연히 손질된 채소들을 구입했다.

그러다 나는 일거양득의 좋은 묘책을 고안해냈다.

동네 할머니들께서 채소를 다듬어 주시면 판매가격에 포함된 수공비를 할머니들께 드리자는 것이었다.


장사와 배달 그리고 김치를 담그는 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우리는 채소 다듬는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동네 할머니들께서는 오며 가며 소일거리로 채소를 다듬고, 소액이지만 용돈을 벌어가셨다.


어느새 우리가게는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식사시간이 되면 함께 보리밥도 해먹고, 더러 잔치국수도 해먹었다. 서로에게 좋은 일이 있을때는 수육을 삶거나, 잡채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음식은 서로 재료를 다듬고 씻어서 만들어 먹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그 풍경이 너무 좋았다.

할머니들은 부추전이나 김치전을 부쳐서 가져오시기도 했고, 아들이 차를 사고 고사를 지냈다며 고사떡을 가져오기도 했다.


*우리 가게는 꼭 물건을 사지 않아도 들리는 곳이다.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커피 한잔이 생각나면 주저말고 문을 열고 들어오시라.


장사를 하며 사람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슈퍼에 대량의 믹스커피를 사러 가는 일은 신나는 일이다.

믹스커피 한 잔은 사람들과 나의 연결고리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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