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장님이 40대에 회사원이 되었다. - 9

초보엄마인 나는

by 청비

내 나이 24살,

계획을 세우고 임신을 했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할만큼 바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평소보다 몸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피곤하다고 쉴 여유도 없었고 늘 그랬듯이 가게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어디 몸이 안좋은가보네. 새댁, 혹시 좋은 소식 있는거 아니야?"

빨간 모자를 눌러 쓴 멋쟁이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배란일을 계산해 보니, 임신일 확률이 높았다.


다음 날 가게 오픈 준비를 마치고, 가까운 산부인과에 들러 초음파 검사를 한 결과 임신이었다.

나름 계획을 하고 임신했지만, 얼떨떨했다.

보통 임신소식을 처음 듣게 되면 감동이 밀려오고, 눈물까지 난다고 하던데.

갑자기 감정이 메마른 사람처럼 덤덤했다.

내 뱃속에 아기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았던 것일까?


임신을 했다고 해서 일상에 큰 변화는 없었다.

평소처럼 먹고, 자고, 일하고

그런 와중에 병원 정기검진을 가는 게 전부였다.


새벽시장에 다니시는 어머니께서 과일을 자주 사오셨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곯아떨어졌다.


일상의 소소한 변화라고 하면,

임신을 하기 전에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우리 가게 단골 호프집에 들러 남편과 시원한 맥주를 마시기도 했었다.

그 당시 우리 가게 거래처에는 술집들이 많았기에 영업한다는 허울좋은 핑계로 술을 즐겼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으니, 술 마신 다음 날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일터로 나갔다.

알코올에 대한 해독능력이 뛰어났다.

술을 한 잔도 못마시는 친정엄마보다 애주가인 친정아빠 DNA를 더 많이 물려받은 모양이었다.

안일한 일상에 유일한 낙은 늦은 밤, 남편과 술집에 들 술 한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 시간은 유일하게 여유롭고, 널부러진 나라도 괜찮았다.


이제 그 유일한 간을 잠정적으로 중단해야 한다.

술 대신 주스를 마시고, 알탕이나 골뱅이 소면대신 과일을 먹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예비엄마라 변 사람들에게 주워 들은대로 음식을 골라 먹었다.


예쁜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시장에서 장사하는 장사꾼에게 예쁜 것만 보일리가 없다.

더러 손님과의 실갱이가 벌어지는 시장 상인들과 욕설이 오가는 광경들을 목격하기도 했다.

재래시장에서 장사꾼으로 산다는 것은 참 치열하다.


그렇게 열 달이 훌쩍 지났고, 예정일이 지나도 출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아기가 너무 커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하셨다. 이른 아침부터 촉진제를 맞고 유도분만을 시도했다.

그래도 아기는 쉽게 세상 밖으로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제왕절개로 분만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진중하게 들렸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내내 긴장이 되고, 두려웠다.

척추에 수면제를 여러 대 놓았다.에 날카로운 주사기가 들어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 느낌이 쎄하면서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 뒤로 서서히 눈앞이 흐려졌고, 의식을 잃어갔다.


다시 눈을 떠보니,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산모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수술한 부위가 쓰리면서도 뻐근했다.

간호사가 아기를 안고 들어왔다.

궁금했다.

건강하게 잘 태어났는지, 누굴 닮았을지...

아기의 얼굴을 보자마자 드는 생각은

남편이나 나보다 연예인 강호동을 닮았다는 것이었다.

눈이 큰 우리 부부, 눈이 작은 아기

우리 부부는 이목구비가 뚜렷한데,이목구비도 작고 포동포동한 아기 얼굴.

열 달동안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아기가 황달 수치가 너무 높아서 치료가 필요합니다."

간호사의 말을 듣고 보니, 아기 얼굴에 노란빛이 돌았다.

초보 엄마인 나는 그제야 아기의 건강상태를 살폈고, 걱정했다.

아기를 품에 안았다.

쌔근쌔근 잠든 아기 얼굴을 바라보면서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그 후로 한 달동안 아기는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았다.


초유를 담은 젖병을 가지고, 아기 면회를 갔다.

황달 수치가 점점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기들이 인큐베이터 안에서 잠을 자거나, 꼬물거렸다.

우리 아기 이름이 쓰여있는 인큐베이터를 바라봤다.

작은 손으로 인큐베이터를 툭 친다.

마치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기가 감았던 눈을 뜨자, 전에 없던 쌍꺼풀이 생겨 있었다.

강호동을 닮았던 아기가 남편을 닮아었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다른 인큐베이터에 체중이 1kg인 아기가 여러 개의 호스를 꽂고 누워 있었다. 그 옆으로 뇌의 모양이 다르게 생긴 아기도 보였다.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들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 신이 존재한다면 참 모질다고 원망하고 싶었다.

나는 그 앞에서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초보 엄마인 나는

아기가 앞으로 건강하게만 자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전 08화20대에 사장님이 40대에 회사원이 되었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