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장님이 40대에 회사원이 되었다 -13
굶주린 소문들은 스스로 죽어간다.
우리 가게를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의 손님들은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바로 가게 문을 나서지만, 앉아서 커피를 마시거나 쉬었다 가는 분들도 있다.
“우리 며느리는 철이 없어. 제 남편 출근하는데 아침밥을 차려주기는커녕 일어나지도 않는다니까.”
시장 근처에 사시는 점쟁이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아이고, 애시 당초에 버릇을 잘 들여야 하는데 말이야. 쯧쯧쯧......”
점쟁이 할머니의 말에 파란 대문집 할머니께서 혀를 차며 대답하셨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어진 대화에 어느 집 며느리가 주된 화제가 되었다.
두 할머니는 식탁 위에 며느리를 놓고 잘근잘근 씹었다.
내가 그 집 며느리가 아닌 이상 그분들 대화 속의 진위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귓가에 들려오는 대화들을 허공으로 흘려보냈다.
그렇게 우리 가게에는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사연들이 공중부양을 하며 둥둥 떠다닌다.
그 사연들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면 많은 다툼이 일어났을 것이고, 관계가 틀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며칠이 지났다.
“새댁! 새댁 있어요?”
가게 안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나를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네. 저 찾으셨어요?”
문밖에 화가 잔뜩 난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나보다 대여섯 살 많아 보이는)
“며칠 전에 우리 어머니께서 여기서 내 흉을 그렇게 봤다면서요?”
입에 거품을 잔뜩 문 여자는 다짜고짜 물었다.
“네? 무슨 말씀이시죠?”
당황한 나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도대체 누구이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잠시 들어오셔서 커피 한잔 하시겠어요?”
나는 흥분이 된 그녀의 마음을 진정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커피를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 진정이 된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그녀는 점쟁이 할머니의 며느리였다. 며칠 전 우리 가게에서 파란 대문집 할머니와의 대화를 들었던 다른 손님이 그녀에게 여러 이야기를 전했다고 했다.
“아니, 내가 살림도 내팽개치고 돈만 펑펑 쓰면서 놀러 다닌다고 우리 어머니가 그러셨다는 데 그게 사실이에요?”
“친정집이 가난해서 시집올 때 아무것도 해온 게 없다고 하셨다는 데 그것도 사실인가요?”
그녀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질문을 퍼부어댔다.
얼핏 들어도 두 할머니의 대화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라있었다.
“글쎄요. 저는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어요.”
나는 단호하게 말을 했지만, 그녀의 눈은 의심으로 가득했다.
“진짜요? 괜히 못 들었다고 하는 건 아니죠? 저는 사실이 중요해요. 사실이......”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이 전해 들은 얘기에 대해서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했다.
며칠 전 두 할머니의 대화를 들은 건 사실이지만, 시시콜콜 그 내용을 전해줄 수도 없었다.
말이란 전할수록 보태지고 변질이 된다.
특히 남의 이야기는 더 쉽게 떠들어대고 확장 시키는 게 인간의 심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이야기는 쉽게 꺼내지 못하지만 타인의 이야기는 쉽게 꺼내는 것.
내 이야기는 쉽게 변질시키지 못하지만, 타인의 이야기는 쉽게 변질시키는 것.
그에 대한 이유가 무엇일까?
내 이야기보다 남의 이야기는 쉽게 거들먹거리면서 가십거리로 삼는 인간의 습성.
물론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에 속한다.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신 거죠?”
“전해 들은 내용에 대해 확신이 없으셨던 거죠? 그럼 이렇게 믿으시는 건 어떨까요?”
“무언가 말이 와전되었다고. 말은 전해질수록 와전되기 쉬운 성질을 지니고 있잖아요.”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솔직히 처음엔 막 화가 나고 당장 시어머니에게 따지러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더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그녀는 그제야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서 말했다.
“어머니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 아니라면 어렵겠지만 잊어버리시는 게 어떨까요? 자꾸 그 말들을 되새기다 보면 어머니와의 관계뿐 아니라 본인한테도 해로워요.”
나는 그녀에게 전해 들었던 불쾌한 이야기들을 지우라고 했다.
마치 내가 상담사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상담사 기질이 있었나? 그런 생각도 잠시 해봤다.
한번 머릿속에 각인된 이야기들을 지운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머릿속에 삭제 기능(delete)을 장착해야 한다.
계속 쓰기만 하고 지우지 않으면 결국 용량을 초과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적당히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사람의 말에 백 근의 무게가 나가는 추를 매달아야 한다.
특히 나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낼 경우에는 더더욱!
그 후로 오랫동안 우리 가게 안에는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붕붕 떠다녔다.
그 이야기들은 공중부양을 하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스스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검증되지 않은 소문들은 관심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무관심으로 대처하는 게 상책이다.
굶주린 소문들은 스스로 꺼져가고 죽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