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장님이 40대에 회사원이 되었다.-14
소금에 절여지는 시간들
"여기요! 대파 한단이랑 마늘좀 주세요."
"배추는 얼마에요?"
"여기요! 알타리 한단은 얼마에요?"
해마다 11월 초가 되면 서서히 김장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배추랑 무는 산지에서 직접 사들여 가게 앞에 무더기로 쌓아놨다. 산지에서 직거래로 들여오니 저렴한 가격에 구매가 가능했고, 그 덕에 근처 채소가게들보다 싼 가격에 판매할 수 있었다.
채소의 신선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최상이었다.
대부분은 김장거리 재료를 구입하고, 계산을 한후 배달을 예약한다. 하지만, 절임배추를 주문하거나 아예 김장을 담가달라는 주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1월 초부터 12월 중순까지는 정신없이 바쁜 시기였다.
자정이 다 되어서 퇴근을 하지만, 새벽 4시가 되면 절인 배추를 뒤집어 주는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이른 출근을 한다.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바쁜 일과속에 푹 절여졌다.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몸을 이끌고 어두운 새벽, 출근을 했다.
다행히 집과 가게는 도보로 3분 거리에 위치했다.
"앗! 큰일났다!"
알람 소리를 못듣고, 새벽 5시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절인 배추는 시간을 맞춰 뒤집어줘야 잘 절여지는 법인데, 눈앞이 캄캄했다.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서둘러 가게로 향했다.
가게 뒤편에 위치한 작업장(수돗가 옆)에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피곤할텐데 더 눈좀 붙이지. 배추는 다 뒤집어 놨으니까, 천천히 가게 문 열어라."
어머니께서 소금물이 튄 앞치마를 벗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리고 새벽시장(도매시장)으로 향하셨다.
어머니께서도 많이 지치고 피곤하실텐데, 늘 나보다 한 걸음 먼저 나아가신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적적하고, 외로우실텐데 내색 한번 없이 늘 일에만 전념하셨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많이 죄송스럽고, 감사하다.
20대의 나는 미성숙한 어른이였다.
어머니의 그늘이 얼마나 컸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니......
어머니께서는 딱 지금의 내 나이에 (마흔 다섯)혼자가 되셨다.
지금의 나는 어머니처럼 억척스럽고 강인하게 살아내지 못할 것이다.
백 번을 생각해도 어림없는 일이다.
남편을 여의고 미혼인 아들 셋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압박감이 컸을 것이다.
게다가 아들 셋은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처지였다.
아들 셋중에 막내인 남편이 제일 먼저 나와 결혼을 하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셨다.
11년을 어머니와 24시간 부대끼며 살았다.
고부간의 갈등?
그런 감정을 느낄 새 없이 바쁘게 살았던 시절이다.
정신없이 분주했던 삶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장철이면 하루에도 여러 번 고무장갑을 갈아 꼈지만, 금새 구멍이 났고 소금물이 새어 들어왔다.
손톱 밑이 아리고 쓰라렸다.
주문 받은 쪽파랑 알타리를 다듬느라 손톱 밑이 까맣게 물들었다.
남편은 종일 오토바이로 김장거리를 배달하고, 뛰어다녔다.
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나.
김장철이면 우리 몸에서 배추 냄새도 나고, 짠내도 났다.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밤마다 신음 소리가 들렸다.
파스의 화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파스를 얼마나 자주 샀는지 단골 약국에서 박카스 한 박스를 주셨다.
힘내라는 메시지였을까?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약사님의 선한 얼굴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의 박카스는 소금에 푹 절여진 일상속의 단비같았다.
어머니와 함께 시장통에서 살아온 나는 많은 걸 배우고 얻었다.
1. 장사는 몸이 바쁘고 고되야 돈이 벌린다는 것.
2. 고객의 소비를 이끌어 내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3. 영원한 단골은 없다는 것.
4.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상대적이라는 것.
5. 입 밖으로 말을 내뱉을 때는 신중하라는 것.
그런 점들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선을 이루고, 나의 형상이 되었다.
"여기요! 절임 배추는 얼마에요?"
문 밖을 서성이는 목소리가 반갑다.
"네~~어서 오세요."
몸이 고되질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바삐 몸을 움직일수록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시절이었다.
배추와 함께 소금에 절여지는 시간들.
그래도 마음만은 파릇파릇 살아나 나를 웃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