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장님이 40대에 회사원이 되었다.-15
용감한 목격자
저녁 무렵이면 찬거리 준비를 하러나온 사람들로 시장통이 북적였다.
퇴근하면서 들리는 워킹맘, 손잡고 부부금실을 드러내는 부부, 퇴근이 늦는 아들 내외의 저녁밥을 준비하러 나온 할머니.
저녁 노을이 질 무렵, 식탁 위에 찬거리를 준비하는 풍경들이 그려진다.
동태찌개, 김치찌개, 닭볶음탕, 제육볶음...
각자의 손에 들려진 재료들로 메뉴를 유추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닭볶음탕엔 감자가 빠지면 안돼죠. 감자는 있어요?"
가게 위치는 대학가 근처의 재래시장에 있었다. 요리에 서투른 자취생에게 넌지시 묻는다.
"아! 참!"
"저 혼자 살아서 조금만 필요한데, 혹시 감자 두개만 살 수 있어요?"
감자 사는걸 깜빡한 학생이 주춤거리다 조용히 물었다.
"아 그래요? 필요한만큼만 골라봐요."
혼자 자취하는 학생에게는 소량의 채소를 판매했다.
무엇이든 버려지는 것 없이 쓰임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소소한 채소라 할지라도
그때였다.
가게 모퉁이를 서성이는 한 여자의 행동이 수상쩍었다.
이것 저것을 집어 들려다 내려놓기를 반복하면서 힐끔힐끔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워낙 바쁜 타임이라 일단 채소 꾸러미를 들고 계산을 요구하는 손님을 먼저 응대했다.
"저기요. 저 아줌마가 금방 마늘 한 봉지를 자기 가방에 넣었어요."
닭볶음탕을 만들어 먹겠다는 학생이 살짝 귓뜸을 해주었다.
"계산하고 가시겠죠. 뭐. 아무튼 고마워요. 학생~~"
나는 일말의 의심은 있었지만,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명확한 근거 없이 함부로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죄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늘 한 봉지를 가방에 넣었다는 아주머니는 슬그머니 자리를 뜨려고 했다.
"저기요. 혹시 뭐 잊으신 거 없어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부른거야?"
아주머니는 의아한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네. 혹시 마늘값 계산을 깜빡 하신 것 같아서요."
최대한 낮은 어조로 조용히 대답했다.
학생의 말에 신뢰가 갔다. 그 학생이 거짓말을 하거나 허튼 소리를 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대한 아주머니의 감정선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묻기로 했다.
오해라면 풀어야 하고, 오해가 아니라면 밝혀야 하니까.
"무슨 소리야?내가 무슨 마늘을 샀다는거야?"
아주머니의 언성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무슨 일이야?"
여기 저기서 수근대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원래 남 일에(특히 안좋은 일에) 관심이 많은 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안좋은 남의 일은 이슈가 되기 쉬운 법이다.
"아주머니 아까 마늘 한 봉지 가방에 넣으시는 거 제가 다 봤어요."
나에게 귀뜸해 준 학생이 대뜸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아니, 학생이 뭔데 나서서 난리야?학생이면 공부나 할것이지. 쓸데없이 어른들 일에 나서길 나서?"
아주머니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학생에게 삿대질을 했다.
"아주머니, 마늘값 계산하시고 가세요. 학생한테 뭐라고 할것 없어요."
괜한 학생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 같아 일단 상황을 종료시키고 싶었다.
"아니 둘이 쌍으로 나를 공격 하는거야? 내가 도둑질이라도 했다는 거야?"
"무고죄 알아? 괜히 엄한 사람을 도둑년으로 몰다가 무고죄로 빵에 들어가는 수가 있어!"
아주머니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흥분이 된 것 같았다.
"그럼 실례지만 가방 안을 보여 주세요. 만약 가방 안에 제가 본 마늘 봉지가 없다면 그때 무고죄로 고소를 하든 하세요."
학생은 아주 당찬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본래 싸움이라는 것에 가담하는 걸 매우 싫어한다.
시끄럽고 따지는 것에 소질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학생은 우리 가게에서 목격한 일로 인해 나서서 싸우고 있었다.
마치 자기 일처럼 ......
"학생, 그만 해."
나는 그 싸움에서 학생을 떼어 놓고 싶었다.
"아니에요. 제가 분명히 목격했고, 부정한 일이라면 밝혀야지요."
학생의 용기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가방 안을 보여줘야 하지?진짜 웃기네."
아주머니는 가방을 끝내 보여주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럼 경찰을 불러서 시시비비를 가려 볼까요?"
이 상황을 빨리 종료시키기 위해 최후의 수단을 썼다.
워낙 손님들이 붐비는 시간대라 이런 일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불미스러운 일은 시시비비를 떠나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오래 끌수록 불리하다.
"얼만데? 까짓꺼 주면 될거 아냐?"
"평생 장사나 해쳐 먹고 살아라!"
아주머니는 꼬깃꼬깃한 천원 짜리 지폐 세장을 던지며 말했다.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계속 대응해 나갈수록 끝이 없는 싸움으로 이어질 것 같았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분노를 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너! 남의 일에 참견하는 거 좋아하다 큰 코 다치는 수가 있어! "
아주머니는 마지막까지 학생에게 화를 쏟아냈다.
"아주머니! 이제 그만하세요. "
엄한 학생이 피해를 보는 것 같아 단호하게 말했다.
"이놈에 집구석 내가 두고 볼거야."
아주머니는 막말까지 퍼붓고 어깃장을 놓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잘못은 아주머니가 했는데 왜 큰소리를 치세요?"
잔뜩 화가 난 학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억울해? 억울하면 출세해!"
아주머니는 불리하다고 느꼈는지 갑자기 출세 타령을 했다.
그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아주머니, 출세는 못했지만 이렇게 그때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어줍짢은 작가에게 소중한 글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정한 일을 목격했을 때 내 일처럼 맞서 싸운 그때 그 학생의 용기, 그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
그 후로 졸업하기 전까지 우리 가게의 용감한 단골 손님으로 자주 드나들었다.
지금쯤 또 어디에서 용감하게 잘 살고 있을 그 학생의 행복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