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장님이 40대에 회사원이 되었다.- 16

아침부터 술냄새 나는 사람이 되었다.

by 청비

11년동안 재래시장에서 채소가게와 신발가게를 운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우리 내외를 불러 앉혔다.

"** 대학교 정문 앞에 레스토랑 하던 건물이 매물로 나왔더라. 내가 생각하기엔 호프집으로 위치도 좋고, 가게 내부도 복층에다 넓어서 괜찮더라."

어머니께서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거래하는 호프집들 보면 장사가 잘되는지 안되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 요즘은 후문보다 정문쪽이 상권이 좋은 것 같아."

언제 그렇게 상권 분석까지 하셨는지,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확신이 느껴졌다.


어머니께서는 우리와 채소가게 운영을 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장통을 전전하셨다. 장사라면 도가 트신 분이다.

언제부턴가 그런 어머니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장사에 관련된 부분만큼은 어머니의 말씀이 결과적으로 옳았었기 때문이다.

결과로써 과정을 입증한다.

얼마 전 '강철부대'라는 TV 프로그램서 707 특수부대 대원이 했던 말이다.

순간 그 문장이 뇌리에 또아리를 틀었다.

때로는 결과로써 과정의 입증을 실패하기도 한다.

물론 과정을 입증하는 결과물에는 큰 성취감이 동반한다.

어머니의 판단이 대단한 결과를 낳지 못한다고 해도 지금과 다른 일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우선 부족한 자금은 은행 대출좀 받아서 가게를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매출이 시원찮은 신발가게는 채소가게로 확장을 하고, 난 이 장사를 계속 하마."

"그래야 나도 경제적으로 니들한테 부담 안주고, 너희들도 싸게 식재료를 가져다 쓸 수 있으니."

어머니의 일목요연한 계획들이 브리핑하듯 이어졌다.

어머니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을 했다.


그 후로 남편과 대학가에 호프집을 오픈했다.

채소가게는 미혼인 둘째 아주버님과 어머니께서 계속 꾸려가기로 했다.

호프집은 대학가라 주 고객이 대학생들이었다.

학기 초가 되면 과대표와 총무가 단체예약을 했고, 그 덕에 오픈하자마자 큰 수익을 얻었다.

10명 정도의 동아리 모임부터 100명 이상의 과모임이 있는 날은 정신없이 바빴다.

많게는 5명 정도의 아르바이트생과 주방아주머니를 고용했다. 남편과 나도 주방과 홀을 넘나들며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PM 5시~AM 5시까지 12시간을 영업하다 보면 진이 빠지는 날도 허다했다.

무엇보다 채소가게를 운영하던 우리가 생활패턴이 바뀌면서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출퇴근 시간이 바뀌면서 수면시간이 틀어지니 처음엔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습관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반복적인 습관이 지속되다보니 훤한 대낮에도 잠을 자게 되었고, 새벽 시간대가 되도 정신이 맑았다.


새벽 5시가 되어서 영업을 마치고 아르바이트 학생들과 근처 감자탕 집으로 향한다.

"여기요!감자탕 대자랑 소주좀 주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을 했다.

"사장님, 내일도 단체예약 있죠? 강의 끝나고 바로 올께요."

일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하던 준호가 말했다.

"일하던 타임도 아닌데, 미안해서 어쩌지?"

선한 얼굴의 준호에게 말하자 준호는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자, 오늘 하루도 모두 수고했어."

우리는 퇴근길에 쓴 소주잔을 부딪혔다.

호프집을 운영하면서 만난 인연들이었지만, 가끔씩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일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조용하고 순해 보이는 준호는 의외로 말이 많았고, 쾌활한 성격이었다. 강인해 보이고 당돌해 보이는 효진이는 예상과 달리 수줍음이 많았다.

첫인상과 달리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지니고 있었다.

첫인상은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 첫인상은 사람의 진면모를 가리는 페이크가 될 수도 있다.


적당히 술을 마시고 24시간 감자탕 집을 빠져나오자 어느새 날이 밝았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학생들이 거리에 넘쳤다.

스무살부터 11년간 채소가게를 운영하던 나는 다시 호프집 사장님이 되었다.

어느새 나는 아침부터 술 냄새 나는 사람이 되었다.

전에는 상상조차 못하던 일이었다.

가끔 퇴근 길의 술 한잔은 우리에게 위안이 되거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아침부터 술 냄새 나는 사람들은 폐인이거나 알코올중독자라고 생각했었다.

보여지는 것만으로 함부로 사람을 판단한 어리석은 나였다.

사람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면 보여지는 것으로 말하지 말라.

수심이 얕은 곳보다 깊은 곳에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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