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장님이 40대에 회사원이 되었다.-17
주인은 멀티가 돼야 해!
" 주방 이모가 출근이 늦네. 오늘은 단체 예약도 있는데 말이야."
5시에 가게 오픈이라 주방 이모는 4시 출근이었다.
오늘은 7시에 120명 단체 예약도 해둔 상태였다.
4시가 넘은 시각에도 주방 이모는 출근 전이었고, 연락조차 없었다.
"여보세요?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전화를 걸어 물었다.
"나, 몸살이 와서 오늘 출근 못할 것 같아요."
갑자기 사전 연락도 없이 출근을 못한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미리 연락좀 주시지 그러셨어요."
"미안해요. 아무튼 오늘은 출근 못할 것 같아요."
"몸조리 잘하세요. 그리고 내일은 출근 하실 수 있죠?"
"네."
전화통화를 간단하게 마무리했다.
주방 이모를 탓할 시간도 없었고, 아프다는 사람을 붙들고 왈가불가할 수가 없었다.
120명의 단체 예약을 받아 놓은 상황에서 나와 남편은 호프집 안주라고는 1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과일을 예쁘게 깍아내는 방법도 모르는 호프집 새내기 사장이었다.
아픈 상황이라 힘든 건 이해했지만, 최소한 미리 사전 연락이라도 해줬더라면...
주방 이모에 대한 원망도 잠시였다.
주변을 수소문해서 호프집 주방일에 경력이 있는 분을 급하게 섭외했다. 마침 얼마 전에 일을 그만두고 쉬는 중이라고 했다.
"갑자기 부탁드려서 죄송해요. 단체 예약을 받아 놓은 상태라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급하게 주방으로 들어오시는 아주머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뭐, 살다보면 그럴수도 있죠. 그래서 주인은 멀티가 돼야 해요."
아주머니는 경력자답게 많은 양의 채소를 손질하고 썰기 시작했다. 가스렌지 위에서는 육수가 보글보글 끓어 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저녁 7시가 되자, 건축과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튀김류와 과일이 섞인 스패셜 메뉴와 골뱅이 소면이 차례대로 홀로 나갔다. 이어서 추가 메뉴인 부대찌개도 테이블로 옮겨졌다.
아주머니는 갑작스런 단체손님들의 안주도 재빠르게 만들었다. 아르바이트 학생들도 분주하게 서빙을 했다.
"단체 예약때는 일을 능률적으로 해야 돼요. 지금처럼 부대찌개 10개를 만들려면 냄비 10개를 쭉 깔아놔요. 미리 썰어놓은 야채를 냄비 위에 쭉 세팅해요. 그리고 썰어놓은 햄이랑 불린 당면 고기를 쭉 얹어요. 양념장을 한 숟가락씩 얹고 마지막으로 육수를 이만큼 부어요."
"미리 육수를 내서 냉장보관하고, 채소도 다 손질해서 썰어놓으면 아무리 단체 손님이 몰려와도 금방 대처할 수 있어요."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하루 일당을 주고 고용한 아주머니였지만, 처음 본 업주에게 자신의 노하루를 전수해 준다는 것이 내내 감사했다.
다음 날 주방 이모는 출근을 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사직 통보를 했다.
대학가라 단체손님도 많고, 가게 규모가 커서 힘들다고 했다. 학기때는 보너스를 주겠다는 제의도 거절했다.
그동안 주방이모 옆에서 설겆이며 보조역할을 해왔지만, 갑작스러운 통보에 난감하기만 했다.
"다른 분 구할 때까지만 부탁드려요. 저희 사정좀 봐주세요."
분명 아쉬운 쪽은 나였다.
생전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번 안하던 내가 처음으로 애원하듯 말했다.
그리고 며칠 전 나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준 분에게 연락을 했다. 내 사정을 말하고,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정신없이 바쁜 가게 사정도 이미 눈치 채셨을텐데, 흥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이셨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주방 이모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주방 이모가 쉬는 날은 혼자서도 척척 주방일을 해낼만큼의 능력자가 되었다.
"이제 제법이네요. 주인이 멀티가 되면 그 어떤 상황도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거에요."
주방 이모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주인은 멀티가 돼야 한다.
누군가를 고용하는 상황에서 무능력함은 내가 을이 되는 상황이 온다. 수많은 관계에서 갑과 을이 존재한다.
갑이라고 해서 갑질을 하는 고용주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갑작스런 직원의 사직통보에도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주가 을이 된다면 직원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고 의지하게 된다.
자영업이든 사업이든 고용주는 당당하게 주체가 될 수 있는 능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한번의 인연으로 배움을 얻었다. 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통해 깨닫고, 성장한다.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