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장님이 40대에 회사원이 되었다.- 18
또 누군가를 용서하면서
대학가 호프집이다보니 학생들은 주로 소주와 생맥주를 마셨다. 가끔씩 양주를 주문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주문량이 많지는 않았다.
소주와 생맥주는 매일매일 발주를 하고, 양주는 팔리는 양만큼만 발주해 재고를 채웠다.
"사장님, 손님이 임페리얼 주문했는데 재고가 없어요."
아르바이트생 준호가 말했다.
"있을 텐데? 내가 찾아볼께."
냉장고와 창고를 아무리 샅샅히 뒤져도 임페리얼 병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시바스리갈, 윈저 같은 다른 양주도 재고가 한참 부족했다.
워낙 양주 주문이 뜸해서 착오가 생길 가능성이 희박했다.
어쨌든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양주로 대체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다른 아르바이트생 선우가 출근을 했다.
"책도 안가지고, 학교 다니는구나?선우는 시험공부 안해?"
언뜻 봐도 선우의 가방이 빈 가방처럼 보였다.
"아?네......"
선우는 멋쩍은 듯 머리를 한번 긁적이더니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시험기간이라 손님이 뜸했다. 공부와 담 쌓은 단골 학생 몇 명이 전부였다. 정신없이 바쁜 날에 비해 오늘 같은 날은 잠시 휴식같은 시간이었다.
대학가라 시험기간이나 방학때는 매출이 현저히 떨어졌다.
"저......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도 돼요?"
선우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오~~!! 시험공부 하려고? 그래. 그렇게 해."
이렇게 한가한 날에 먼저 알바시간을 단축하겠다고 하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쨍그랑~ 쨍그랑~"
선우가 사라지는 뒷모습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아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선우의 가방에서 유리병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선우야! 잠깐만!"
카운터에 있던 남편이 뭔가 직감한듯 선우를 불러 세웠다.
"혹시, 뭐 할 말 없니?"
남편이 아주 조용히 물었다.
"네? 무슨......"
순간 선우의 하얀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가방좀 보여 줄 수 있겠니?"
남편의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출근 할때는 분명 빈 가방처럼 보였는데, 선우의 가방은 어느새 배불뚝이가 되어 있었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선우는 그제야 가방 안에 들어 있던 양주 세 병을 꺼내놨다.
그동안 가게에서 양주를 몰래 훔쳐서 친구들과 마셨다고 했다.
"너 이제 스물 한 살이야. 성인이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런 행동을 하면 되겠어?"
"만약 내가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절도죄가 성립되는 거야. 앞날도 창창한 애가 왜 이런 짓을 해?"
남편이 선우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다시는 이런 짓 안할께요."
선우는 고개를 푹 숙인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에게 기회를 주는거야. 앞으로는 어디 가서라도 이런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한번이 실수지. 실수가 반복되면 그건 더 이상 실수가 아니야."
나는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선우가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길 바랐다.
"감사합니다. 용서해 주셔서......"
선우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문 밖에서 세차게 비가 내렸다.
"자, 이 우산 쓰고 가. "
내가 아끼는 무지개색 우산을 손에 들려줬다.
저 멀리 빗속을 걸어가는 선우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없어진 양주 몇 병보다 선우의 행동이 더 신경쓰였다.
이번 일을 용서해줌으로써 앞으로 반듯하게 살아가길 바랐다. 혹시라도 '내가 이런 행동을 했는데도 그냥 넘어갈 수도 있구나.' 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지 염려가 되기도 했다.
한 사람에 대한 용서는 그 사람의 삶이 더 나은 길로 들어서길 바라는 마음이다.
죄를 짓고 진심으로 반성을 한다면 그 마음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 후로 선우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일하기도 껄끄러웠을 것이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선우는 지금쯤 어디에서 누구의 부모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렸으면 좋겠다.
지난 과거를 회상하며 웃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또 누군가를 용서하면서 진심으로 그 사람의 앞날을 걱정하고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덧: 위 글의 인물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