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장님이 40대에 회사원이 되었다.-22
또 다른 내 자아는 멀쩡한가?
"어서 오세요. 몇 분이에요?"
출입문을 열고 들어 오는 패션 디자인과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제 얼굴만 봐도 어느 과 학생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12명 예약했거든요. 7번 자리에."
자주 오는 학생들이라 테이블 번호까지 다 기억한다.
가게 정중앙에 위치한 메인 테이블로 안내했다.
미리 예약해 둔 안주들과 술을 세팅하기가 무섭게 부딪히는 술잔에서 생기가 돋았다.
그러다 취기가 오른 학생들은 술병이나 잔을 깨뜨리기도 했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어요?"
"얼른 치워 드릴께요."
산산조각난 유리조각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날카로운 유리조각은 서둘러 뒷정리를 해야 한다.
그들은 점점 흥겨운 분위기에 취해갔다.
어딘가에 몰입하다 보면 주변이 잘 보이지 않는다. 술이란 잠시 눈을 가리는 안대가 될 수도 있다. 사실, 현실을 망각하고 부주의한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술을 마시는가?
: 잠시 복잡한 현실을 잊고, 또 다른 내가 되기 위해 마신다.
: 사람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위해 마신다.
: 단순한 재미와 쾌락을 즐기기 위해 마신다.
: 스스로 위안을 얻기 위해 마신다.
~ 위해 라는 말이 술을 마시는 행위에 궁극적인 목적을 부여하는 것 같다. 꼭 ~ 위해 술을 마시는 건 아니다.
맹목적이거나 습관적인 행위일 수도 있다.
술은 무의식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는 매개체다.
어린 시절 나는 술을 좋아하는 큰아버지를 보면서 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큰어머니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혼자 되신 큰아버지를 엄마가 모시고 살았다.
큰아버지와 아빠는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엄마에겐 시아버지 같은 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
큰아버지는 매일 습관처럼 술을 드셨고, 술주정이 심했다.
잠이 들때까지 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평소의 큰아버지는 순박하고 조용한 시골 농부였는데, 술만 드시면 으르렁 거리는 호랑이 같았다.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금도 내 기억속의 큰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비틀거렸다.
전 직장동료는 술을 마시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이 되곤 했다. 평소의 그녀는 쾌활하고 웃음이 많았다. 술을 마신 후 그녀는 180도로 변했다. 술을 마신 후의 그녀는 큰 소리로 흐느껴 울었다. 처음엔 무슨 사연이 있겠거니 했지만, 점차 그녀의 모습에 지쳐갔다.
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은 그녀는 유쾌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또, 친한 지인 한 명은 술만 마시면 수다쟁이가 되었다. 일상의 그녀는 소극적이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가끔은 너무 말수가 적은 모습이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술을 마신 그녀의 또 다른 자아는 진담과 농담을 수시로 넘나들며 긴 시간동안 떠들곤 했다.
그 시간만큼은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의 모습과 마주했다.
어느 땐 차라리 말수가 적은 그녀의 본래 모습이 그리웠다.
대학가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면서 위에서 언급한 유형들을 종종 목격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쩌면 술이란 감춰진 또 다른 자아를 드러내면서 주변인들에게 나를 명확히 고지하는 거라고.
고로 누구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자아가 있다면, 술을 멀리하라고 말하고 싶다.
주변인들에게 민폐가 되거나, 흉거리가 된다면 굳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술 장사를 하면서 술을 멀리 하라니, 어패가 있긴 하다.
꼭 당부드리고 싶은 말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적당히'의 음주 문화를 지키라는 것이다.
술에 지배당하는 사람보다 지배하는 사람이 되자.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을만큼의 적정 수위를 지키는 것도 하나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술을 마신 후 최악의 유형은 '폭력적 성향'이 강해지는 사람이다. 물건을 부숴버리거나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악질 중의 악질이다.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폭력을 가하는 광경을 목격한 후로 최악의 유형으로 손꼽았다.
평범한 사람도 술을 내세워 잔인한 폭행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이 유형은 절대 금주를 요하는 블랙 리스트다.
술을 마신 후의 또 다른 내 자아는 멀쩡한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