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장은 커튼을 젖히고,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었다. 평일 오전 신선한 바람을 집안에 들이는 일이 처음이었다.
네이비 컬러의 커튼이 수줍게 춤을 춘다. 멀리 북한산 자락의 모퉁이가 보인다.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땐 북한산의 수려한 경관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하지만, 모퉁이의 변화는 사계절을 알리기에 충분했고 오히려 모퉁이를 돌아가면 어떤 풍경이 보일까?라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쉬자 산뜻한 바람이 가슴 깊이 들어왔다. 그 순간에도 외로운 자들의 외침은 계속되고 있었다.
"카톡 카톡 카톡"
고등어조림에 계란말이를 반찬으로 먹는다는 둥 오늘은 세수조차 안 했다는 둥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실시간으로 쏟아졌다.
그동안 회사 사원들과 이런 사소한 얘기들을 나누었던가? 자가격리라는 시간적 여유와 혼자라는 외로움이 이들을 서로 흡수하고 있었다.
김 부장은 자가격리라는 현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회계팀 이 차장은 어머니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입원하셨다고 했다.
'지금 제 처지가 너무 힘이 듭니다. 병환 중이신 어머니를 뵐 수도 없고......'
이 차장이 단톡방에 글을 남기자 모두 제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홍보팀 강대리가 영상통화로라도 어머니를 뵈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곧바로 이 차장은 영상통화를 했고,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고민이나 걱정은 나눗셈이다. 내 고민을 타인과 똑같이 분배할 수는 없지만, 그 누군가는 일부의 짐을 덜어주기도 한다. 혹은 고민이나 걱정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그들은 서로 각자의 격리된 공간에 있지만, 단톡방이라는 소통의 매개체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회사에서는 업무적인 주제로 대화를 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선을 넘지 않고 지냈다.
굳이 누구의 집안 사정을 알 필요도 없었고, 누구의 이직에 대한 고민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들은 자가격리를 통해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고 틈을 열어 놓은 것이다.
김 부장은 지금의 이런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어졌다.
'소통'이라는 키워드가 뇌리 속을 툭 치며 지나간다.
'2주 후 회사에 복귀하게 되면 소통이라는 연결고리는 끊어지고 말 거야.'라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소통을 유지하는 법'이 뭘까? 어떤 중요한 기획안을 생각하듯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소통'이라는 큰 카테고리를 정해놓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물론 이사에게 잘 짜인 기획안을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때로는 정해진 환경이 목표를 달성하게 한다. 기획안 마감 날짜에 맞춰 프로젝트를 완성하듯. 정해진 틀이 없으면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 흔들린다.
그것이 '좋은 환경'을 구축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전에 사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잠에서 깬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나영!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자고 있니?"
김 부장은 나영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부아가 치밀었다. 나영은 작년에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다. 결혼 후 바람을 피우다 이혼을 당하고 9살짜리 아들의 친권까지 포기했다. 게다가 이혼 후 제대로 밥벌이도 못하는 김 부장의 아픈 혹이었다.
아프고 밉고 귀찮지만 차마 떼어낼 수 없는 혹.
"우리 회사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고, 검사 결과 난 음성이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 코로나 검사받아. 지금 당장 일어나서! 응?"
김 부장은 분노와 걱정이 뒤엉킨 어조로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나영을 생각하면 그냥 막 화가 났다.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나영에 대한 분노, 짠함, 걱정......
"언제나 오빠는 일방통행이지? 오빠는 대화라는 게 있다는 걸 자꾸 까먹는 거 같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끊어."
나영은 매몰차게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어제 먹다 남은 소주병을 열었다. 식탁 위에 굴러다니는 눅눅해진 김 조각이 보였다. 까맣고, 눅눅해진 김 조각...... 처량했다.
하지만, 차마 버릴 수도 없었다.
김 부장은 끊겨버린 휴대폰을 붙잡고 멍하니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소통 프로젝트' 어쩌고 저쩌고 떠들던 자신이 정작 나영에게 크게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일방통행'이라는 소리를 듣는 자신이 '소통'을 논한다는 게 우스웠다.
우리는 가끔 거울을 보지 못한 채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착각한다. 나 잘못을 충고해주는 타인은 나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내가 모르고 있는 '나'로 파편화된 거울 조각을 맞추어야 제대로 자신을 볼 수 있다.
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아저씨."
"은혜야, 아저씨가 물어볼 게 있는데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지?"
김 부장의 진지하고 낮은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