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애 하나 살렸더니, 학원 이미지가 죽었다

성장을 이끌면 칭찬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브랜드 훼손’이었단다.

by Lumi 루미

그날, 아이 하나를 살려냈다고 생각했다.
문장 하나 제대로 읽지 못했던 아이가 미국 교과서 4점대 본문을 읽었다.
맨 처음 만났을 땐, 책장을 넘기기보다 눈을 굴리는 게 더 익숙한 아이였다.
단어 시험은 늘 백지였고, 책을 펴면 한숨부터 나오는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가 해냈다고 믿었다.
그리고 나도, 뭔가 해냈다고 느꼈다.

그래, 이게 진짜 교육이지.
이미 잘하는 아이들에게 떠들어대며 시간 때우는 게 아니라,
아예 바닥부터 시작한 아이를 데리고
‘나도 할 수 있다’는 곳까지 데려가는 일.

그래서 나는 늘 낮은 반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들 높은 반, 잘하는 아이들 맡고 싶어하는 건 안다.
그 반은 그냥 말만 해도 애들이 스스로 적당히 알아듣는다.
강사는 강의 아닌 낭독을 하고,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해도 성적은 알아서 오르니까.

그런데 나는 못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은 아이들이
“선생님, 이거 저도 읽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을 좋아했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나서는 아이가
무언가 하나는 배웠다고 느꼈으면 했다.
그게 내 자존심이었고, 나의 직업윤리였다.

그건 오래전 내 교수님에게서 배운 자세이기도 했다.
그 영국인 교수님은 수업이 있는 날 전날엔 절대 술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수업은 무대야. 준비되지 않으면 올라가지 마.”
그 말이 지금도 귀에 남아 있다.

그렇게 아이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대하던 어느 날,
한 아버지가 다가왔다.
“선생님은 진정성이 있으세요.”
그 말은 새벽 12시 카톡으로 이어졌고,
솔직히 피곤했지만 그래도 ‘그래, 자식 교육에 진심이신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이 끝난 후
그 아버지가 조심스레 이런 말을 꺼냈다.

“다른 학부모들한테는 그 아이, 못하는 거 잘하게 됐다는 얘기 너무 하지 마세요.
그런 애들이 이 학원에 들어오면, 결국 잘하는 애들 다 빠지고 학원 이미지도 떨어져요.”

정중한 말투였지만, 말끝이 날카로웠다.
아, 나는 지금
‘못하던 아이를 잘하게 만든 선생님’이 아니라,
‘학원 브랜드를 위협하는 변수’가 되어버렸구나.

그날 처음, 교육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가르치고 있었음을 실감했다.
‘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애들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곳.

그 아버지는 아마 자기 자녀가
못하는 아이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을 것이다.
그 아이가 성장을 하든 말든,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 반 수준’이 떨어진다고 느꼈던 거다.

여기선 실력보다 소속이 중요하다.
학원 반 하나가 일종의 라운지이자 인증마크다.
“우리 애 그 반이야.”
이 말 한 마디면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공기가 달라진다.

이쯤 되면, 차별이란 말이 뭔가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이다.

누가 대놓고 “넌 못하니까 빠져”라고 말하나.
그런 시대는 지났다.
대신 말한다.
“그 반 요즘 좀… 분위기 달라졌죠?”
“예전엔 수준이 더 높았는데 말이에요.”
말끝은 흐리지만, 선은 분명하다.

런 현상 심리학에선 이렇게 부른다.
Aversive discrimination,
한국말로는 회피적 차별.

겉으론 “저는 차별 안 해요”라고 말하면서
속으론 ‘나와는 다르게 생긴, 다른 배경을 가진 그 사람’과
거리를 두는 태도.
가까이 오는 건 불편하고,
같은 공간에 있는 건 꺼려진다.

대치동에서 이 개념은
반배정표와 상담실에서 벌어진다.
“저희 애는 레벨 높은 반이 맞는 것 같아요.”
“그 반에, 좀 특별한 케이스가 있더라고요?”
말은 공손하지만, 핵심은 분명하다.
“우리 반엔 안 됩니다.”

우리는 은근하게 말하고,
조용히 구분 짓고,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

그 누구도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메시지.
‘이 반은 잘하는 애들만’

나는 아직도 그 아이가 교과서 한 페이지를 다 읽고
“선생님, 저 이거 다 읽었어요”라고 말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 순간엔 어떤 위계도 없었다.
그 애는 그냥, 자기가 해냈다고 믿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믿어준 사람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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