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를 머리에 다는 시대

그리고 그것을 원한 건 우리였다

by Lumi 루미


인간은 자기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불안해하게 돼 있다.
그리고 예민해진다.
눈에 안 보이면 상상은 증폭되고,
상상은 곧 의심이 된다.

아이 엄마들은 그렇다.
아이가 뭐라 한마디라도 하면,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첫 번째 루틴은
CCTV 요청이다.

정당하다고 한다.
정의롭고, 공평하단다.
그걸 확인할 권리가 있대.

나는 잠시 헷갈렸다.
CCTV는 원래 경찰서에서
도둑 잡는 데 쓰는 거 아니었나?
학교에서, 교실에서,
사람의 감정과 말이 오가는 그 공간에서
정말 ‘기계의 눈’이 모든 걸 재단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
이쯤 되면 아이들 머리 위에
실시간 블랙박스를 달아야 하지 않나.
AI가 인생 절반을 가져간 이 시대에,
머리에 GoPro 하나쯤은 달아줘야
엄마도, 선생도, 원장도, 다 안심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모든 말, 모든 행동이 기록되는 삶.
그 안에서 선생이라는 직업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기록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일이 된다.

이건 교육이 아니다.
이건 생존이다.

나는 선생이 아니었다.
강사였다.

나에게 스승이라는 말은
국가가 보장하고
정규 커리큘럼이 존재하는
그 ‘학교’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학습, 생활, 사회성, 인생 전반을
기꺼이 책임질 각오가 된 사람들.

나는 그런 걸 굳이 하지 않았다.
나는 계약서를 쓰고,
수업을 하고,
시험 성적을 만들고,
잘된 아이를 더 센 학원으로 보내줬다.
그게 내 일의 끝이었다.
그게 맞는 거였다.

근데 학교는?
거기도 이젠 달라졌다.

불신이 기본값이고,
예민함은 옵션도 아닌 기본 사양.
“우리 애가 그랬을 리 없어요”부터 시작되는 정서적 전쟁.
아이 하나 레벨테스트 보려고
학교에 가짜 진단서 제출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사회.

전교조, 진보, 보수, 색깔, 계...
도대체 교실 안에서조차
왜 이렇게 갈라야만 하는 건데.

우린 매일매일,
조금씩
이 끔찍한 감시 사회를
더 정교하게 조립하고 있다.
심지어 기꺼이.
“그게 공정하니까요.” 라고 말하면서.

모든 장소, 모든 사람, 모든 순간에
예민함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도, 너도, 우리도.
이건 그냥 조용한 디스토피아다.
아이들 웃음소리 말고,
블랙박스 작동음만 들리는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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