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광은 지켰고, 정신은 좀 나갔다

관찰하고 기록하던 강사의 10년 컵밥 생활기

by Lumi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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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유명한 강사이자 한 기업의 대표,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이 방광암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요인은 강의를 하면서 쉬는 시간도 없이 오줌까지 참았기 때문이란다.
나는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진 못했지만, 같은 업계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오줌은 참지말아야지.


수업과 수업 사이, 인생의 장면과 장면 사이.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밥이다.
나는 하루 세 끼를 정석대로 챙겨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식탁 앞에 앉아 정갈하게 먹는 그런 양반도 아니다.
옛날 어른들이 보면 쌍○이라 욕했을지도 모르지만, 밥을 먹는지, 뭘 하는지 모르게 먹는 걸 좋아한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땐 대부분 노트북 앞에서 일하면서, 혹은 티비를 보면서, 아니면 그냥 멍하니 생각하면서 먹는다.
식사 예절? 그건 나와 별로 인연 없는 단어였다.

강사로 일하던 시절엔 거의 매일 컵밥을 먹었다.
노량진 컵밥도 유명하지만, 대치동 컵밥은 훨씬 더 무섭다.

점심시간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에, 수업 들어가기 두 시간 전에 돌솥비빔밥을 시켜놓는다.
교포 강사들은 대치동의 양식 맛집을 줄줄 꿰고 다녔지만, 나는 교포는 아니고 그냥 ‘세미 교포’.
그래서 가장 자주 먹은 건 은마상가 돌솥비빔밥이었다.
진짜, 개맛있다.

지금도 가끔 대치동에 갈 일이 생기면, 그 집에 들러 돌솥비빔밥을 먹는다.
예전만큼 꿀맛은 아니지만, 그땐 정말 인생의 낙이었다.
나는 그 돌솥밥을 시켜 컵에 나눠 담는다.
하나는 수업 전에, 하나는 점심쯤, 마지막은 쉬는 시간마다.
누가 보면 컵밥 다이어트 하는 줄 알겠지만, 나에겐 맛있는 걸 세 번에 나눠먹고 돈도 아끼고 위장도 쉬게 해주는 삶의 방식이었다.


수업은 밤 10시에 끝났고, 정리하고 집에 가면 11시.
가끔은 동료 쌤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갖기도 했고, 어쩌다 보면 새벽 4시까지도 마셨다.
교포 쌤들은 흥이 많아 클럽, 술집, 바를 자유롭게 오갔고, 나는 그런 자리에 어쩌다 한 번씩 어울렸다.
그중 하나, 잊지 못할 밤이 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동료 쌤을 그냥 두고 올 수 없어, 새벽 5시까지 해장국 먹는 걸 기다려줬다.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 상태로 두면 섬에 팔려갈까 봐 못 가겠더라.
그 시절엔 그런 뉴스도 많았다. 클럽, 헌팅, 시비, 새벽의 수치 같은 일들이 흔한 뉴스였다.
나는 학원 강사로 살면서 우리나라 밤문화, 유흥문화, 그 모든 피곤한 뒷면들을 관찰했다.
관찰은 내 오랜 습관이었다.

어릴 때부터 모든 걸 메모하고 기록했다.
내 꿈은 원래 기자였다. 사회부 기자.
경찰서 조그만 방 안에서 남녀가 썩여 기사거리를 찾는 직업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세상의 더러운 진실이든 치졸한 소문이든, 알고 싶었고, 적고 싶었다.

결국 나는 기자가 되지 못했다. 대신 영어 강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교과서를 쓰는 작가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아주 멀리 돌아온 것만은 아니다.
기자가 되었다면 양심을 몇 번쯤 팔아야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순수한? 아이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단어 하나하나에 삶의 무게를 담아 문장을 쓰고 있다.
뭐, 또이또이다.


다시 돌아와, 그때 그 새벽, 동료 쌤은 일 마치자마자 세컨잡을 뛰듯 클럽 복장으로 갈아입었고,
나는 그냥 몸을 가리기 위한 수준의 옷을 입고 뒤따랐다.
나도 어디 가서 빠지는 얼굴은 아니였다 믿고, 다행히 클럽에서 뺀찌당하진 않았다.
동료쌤이 내 얼굴에 분칠을 해준 덕분.

그 새벽, 해장국에 또 소주를 부어 마시는 동료 쌤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옆 테이블엔 누가 봐도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우리는 다른 세계에 살았지만, 그 새벽의 피곤함만큼은 정확히 같았다.


그게 나의 종이컵밥 인생 10년이었다.
오줌은 잘 누고, 밥은 세 번에 나눠 먹으며, 관찰과 기록 속에 살아온 시간.

지금은 그 시절처럼 살진 않는다.
밤을 새워 수업하고, 새벽에 해장국을 먹고, 클럽 앞에서 분칠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나는 이제 컵밥 대신 원고를 나눠 담고, 학원 강사 대신 교과서를 집필하는 여자가 되었다.
종이컵에서 종이책으로.


그래도 가끔 생각한다.
그때 그 대치동의 밤, 은마상가 돌솥비빔밥, 새벽에 비틀거리던 동료의 뒷모습.
모든 것이 지나갔지만, 어쩌면 그 컵밥 인생이 지금의 나를 쌓아올린 밑반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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