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은 코미디, 대치동은 무대. 이제, 그 16년을 꺼내 쓴다.
대학 때 난 지면 기자가 되고 싶었다. 조중동 중 한 곳에서 인턴도 했다. 나 포함, 한겨레를 응원하는 에세이를 썼던 또 다른 친구까지 딱 두 명 빼고, 모두가 서울대, 연고대 국문학과 출신이었다. 사진부는 카이스트였고, 다들 이름값부터 빛났다. 나도 어디 가서 빠질 학교는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는 철저히 기타등등이었다.
그러다 인턴이 끝나고,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시점. 남자친구가 생겼다. 젠장. 남자는 도움이 안 된다. 적어도 나 같은 사람한텐.
그 무렵, 영어는 좀 했고 과외로 돈도 좀 벌었고, 그래서 학원강사를 시작했다. 그게...Big 3 어학원 중 한 곳이었다. 어떻게 첫 직장이 제일 빡센 학원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미련하고 무모했지만, 젊으니까 가능했다.
그 후로 대치동에서 16년. 나름 입시 전선 한복판에서, 화려한 무대에 서 있었다. 아이들은 상위 1%였고, 학부모는 더 빡셌다. 대치사거리, 은마사거리의 이중주차 줄은 오늘도 그대로일 것이다. 그 차 안에서 터지는 보이지 않는 전쟁들. 학원 안은 말 그대로 코미디였다. 웃기다는 게 아니다. 웃기지도 않게 돌아갔다는 말이다.
물론 나도 그 틀 안에 있었고, 잘했다. 가르치는 건, 진짜 자신 있었다. 눈감고도 가르쳤다. (물론 눈을 뜨고 했다.)
하지만 늘 마음 한켠에… “학원강사나 하고 있네.” 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 안에서? 아니면 바깥에서? 글쎄.)
어떤 친구들은 회사를 때려치우며 말했다. “아 나도 그냥 학원강사나 할까?” 뭐라는 거야. 내심 기분 나빴지만, 그냥 씹었다. 그다지 남의 말에 예민한 편은 아니라서.
7세고시라는 단어가 최근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치동 엄마들에겐 새삼스러운 말도 아니지만, 미디어가 그걸 ‘발견’한 듯 떠드는 걸 보면 좀 웃기다. 15년 전에도 그랬다. 초등학생들이 레벨업과 다운에 민감했고, 7세들이 이미 중1 교재를 돌리고 있었다.
어떤 부모들은 말한다. “공부 잘하는 게 뭐 그리 대수야?” 그런데 밤 10시가 다 되어, 코찔찔이 초등학생을 데리고 오는 장면은 흔하다. “그래도 얘가 여기 다녀야 안심돼서요.”
누가 누구를 안심시키는 걸까. 아이는 안다. 엄마가 불안하다는 걸. 엄마는 안다. 아이가 엄마 눈치를 본다는 걸. 강사는 안다. 이 시스템이 비정상이라는 걸. 그리고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그 무대에 있지 않다. 그게 싫어서 나온 것도, 감당이 안 돼서 나온 것도 아니다. 그냥 시간이 됐다. 그리고, 그 16년의 이야기를 꺼내 쓸 준비가 된 거다.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지금 내 책상 앞에서 그 시절을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하나씩 꺼내볼 생각이다.
그 이야기를 누가 궁금해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아주 조금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