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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운 Feb 08. 2024

복사꽃이 좋아

짧은 메모장

 불투명한 시트지가 붙어있는 창문에 못 보던 그림자가 생겼다. 손가락 한마디 크기 정도 되는 그림자다. 무슨 짓을 해도 그 그림자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가 없다. 집이 기울어 열리지 않는 녹슨 창문에 힘을 줘본다.  끼익 끼익 듣기 싫은 소리만 들려온다. 위쪽 창틀에서 먼지가 날린다. 눈살을 찌푸리며 몇 센티 열린 창문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그림자 쪽을 더듬었다. 분홍색 꽃잎 한 장이다. 벌써 봄이 올 땐가. 바람도 따뜻하니 추운 겨울이 간 게 확실하다. 이제 봄인가 보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온다. 냉장고를 열었다. 나는 아침에 랩을 씌워뒀던 과일 통조림을 꺼내 들었다. 오늘 먹을 수 있는 과일은 세 조각. 이렇게 하면 일주일은 더 살 수 있겠지.. 


나는 거실 천장에 달려있는 넥타이를 바라봤다. 지금 당장 죽어도 상관없는 게 나다. 이 몸뚱이로는 더 이상 하고 싶은 게 없다. 아 한 가지 있다면 메이플 스토리. 생각난 김에 컴퓨터를 켜본다. 


'신선한 남자님이 채팅을 걸어왔습니다' 

컴퓨터 하단에 메시지가 떴다. 나는 얼른 메시지를 클릭했다.

'저녁 먹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본가에 왔거든요'

신선한 남자가 말했다.

'오 본가.. 그러시군요 무슨 반찬이었나요?'

나는 입으로 내가 치는 메시지를 읽으며 고쳐지지 않는 독수리 타자법으로 타자를 쳤다. 신선한 남자는 가장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나의 구세주이자. 인터넷 속 나의 유일한 친구이다.

'김치찌개였습니다. 당근이 좋아 님도 식사하셨나요?'

그럼요 저도 엄마가 해주신 밥을 먹었습니다.라고 말하려다 쓴 문장을 모두 지웠다. 주변을 둘러봤다.


 기울어져가는 나의 방. 드라마에 나오는 휑한 집처럼 파란색이 아님에도 파란색으로 보이는 나의 집. 엄마는 없다. 가족들도 없다. 김치찌개도 미역국도 없다. 이 집엔 나 혼자 남았다. 컴퓨터에서 손을 뗐다. 신선한 남자가 물음표를 연달아 보낸다. 답장하고 싶지 않다. 나는 숨을 길게 뱉었다. 나의 한숨과 함께 먼지가 떠다니기 시작한다.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쓰레기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코끝에서도 찌린내가 난다. 치울까 싶지만 귀찮다. 지금은 그냥 발끝이 시리다. 손을 비벼 발끝을 꽉 잡았다 놨다.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배고픔이 사라지는 혈자리도 눌러봤지만 소용이 없다. 배꼽시계도 고장 난 게 분명하다.


나는 몸을 일으켜 현관문 앞으로 갔다. 10개 넘게 달아놓은 자물쇠를 밑에서부터 하나씩 풀었다. 현관문을 빼꼼 열어보았다. 반쯤 열린 문 틈 사이로 손을 넣어 문고리를 만져보았지만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다. 천천히 문을 닫아 이번엔 위에서부터 자물쇠를 하나씩 잠갔다. 나는 문에 등을 기대 현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늘은 엄마가 문을 두드리지 않은지 30일째 되는 날이다. 


성우야 성우야 하고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가, 매일 새로운 통조림을 문고리에 걸던 엄마의 손길이 이제는 끊겼다. 엄마도 나를 버린 걸까? 재개발 때문에 이사한다고 온 가족이 짐을 쌀 때도 나는 방안에만 있었다. 그때도 엄마는 내 편이었는데 이제 내게 남은 건 윙윙 돌아가는 뜨거운 컴퓨터와 눈금으로 표시한 통조림 그리고 신선한 남자뿐이다. 


띵하는 소리와 함께 신선한 남자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당근이 좋아 님 긴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제가 일이 좀 생겨서  앞으로 잘 접속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는 메시지를 읽자마자 다급하게 답장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나는 입으로 메시지를 읽으며 그에게 답장했다.

'별일은 아니고..  누가 좀 없어져서요.. 곧 뵙죠 제가 만나러 가겠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단호했다. 진짜로 올 것만 같았다. 6년째 아무에게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는데 누가 온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누가 없어졌을까? 그가 사랑하는 사람일까? 그의 가족일까? 사랑? 사랑이라는 말을 들어본 지도 오래된 것 같다. 아주 어릴 때 엄마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가물가물하다. 여전히 몇 센티 열려있는 창문에서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온다. 스르륵, 낮에 보았던 손가락 한마디만 한 꽃잎이 두어 개 더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복사꽃잎이다. 벚꽃. 엄마가 좋아하는 꽃인데.. 

 어릴 적 엄마 생신날 엄마가 나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엄마는 복사꽃이 제일 좋더라" 그래서 봄이 참 좋아. 따뜻하고, 예쁘고.


우리 엄마도 신선한 남자의 누군가처럼 사라진 것이 아닐까?

정말 엄마가 나를 버린 게 아니라면, 봄이 옴과 동시에 사라진 게 분명하다.


컴퓨터 화면 속 게임 속 캐릭터가 팔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방향키를 눌러보니 캐릭터가 오른쪽 왼쪽으로 움직인다. 

나는 다시 한번 거실에 걸려있는 넥타이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있다간 굶어서 죽을지도 모른다. 성인 남자가 통조림 하나로 일주일을 버틴다고? 말도 안 된다. 냉장고로 저벅저벅 걸어가 입속에 남은 통조림을 모두 쓸어 넣었다. 국물까지 후루룩 마시고 나니 배고픔이 조금 가신다. 옷을 입자. 깨끗한 새 옷을 입고 눈곱도 떼고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자. 


나는 현관문 앞에 섰다. 어디서부터 자물쇠를 풀까 아래? 위에? 아니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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