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운 Sep 09. 2022

수영장의 예술가 할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보고 싶은 사람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나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수영장에 들어섰다. 6학년 때 함께 수영을 배웠던 아이들이 더 이상 수영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성인반에 들어가 수영을 해야 했고 아줌마 아저씨들의 문화에 적응해야 했다.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달랐다. 싫으면 안 놀면 되었고,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생매장을 당했다. 아이들의 무리 본능은 참으로 무정했고 안정적인 무리에 소속되기 위해서라면 아이들은 무슨 짓이 든 다했다. 


 나는 인기 많은 아이들처럼 꾸미기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그저 조용히 적당한 친구들 사이에서 어울리고 싶었기에 '파'라고 불리는 시스템 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스템이 있었기에 내가 그곳에서 버둥거리는 것도 가능한 일이었고, 그때를 불행했던 때라고 말하며 회상할 수도 있는 거겠지..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수영장에서 14살을 맞이했다. 그리고 작게나마 사랑을 시작했던 것 같다. 아기 같은 마음이었겠지만 나는 수영 선생님을 좋아했다. 그는 내가 성인반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나를 특별히 챙겨주었으며 준비운동을 마치고 한 바퀴 걷는 시간엔 물속에서 장난을 치며 놀아주었다. 그런 일이 너무 자주 될 때면 아줌마 아저씨들이 내게 눈치를 주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크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줌마 아저씨들도 나를 잘 챙겨주었다. "중학생!" "애기!" 등의 호칭으로 나를 부르며 샤워장에서는 수건을 챙겨주고,  수영장에서는 키판을 챙겨주는 등 나를 많이 위해주었다. 이 덕분에 소속감에 몸부림쳤던 14살의 기억은 나름대로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분들과 달리 날카로운 할머니 한분이 계셨다. 나는 그 할머니가 늘 궁금했다. 속도가 느리지만 눈치 보지 않고 제 속도에 맞춰 고귀한 자세로 수영장을 걷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본인의 나이가 아주 많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칭했다. (사실 내가 보기엔 그렇게 많아보이진 않았다.) 나는 할머니와 물 밖에서 몇 마디 주고받곤 했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지금 그리고 있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처음에는 말씀이 어눌하셔서 잘 듣지 못했지만 집에 가면 그 할머니의 혼잣말이 자꾸만 생각났다. 


 "노란색이 부족했어"


 다음날 나는 수영이 끝나고 밖에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미술학원에서 가져온 노란색 물감도 함께였다. 머리를 잘 말리지 못해 물이 뚝뚝 떨어져 로비를 적시고 있었다. 그때 다리를 절뚝거리며 안경을 쓴 할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수영장 밖에서 보니 긴가 민가 한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할머니!" 


 할머니는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림 이야기를 할까, 주머니에 있는 물감을 꺼낼까 고민이었다. 왠지 모르게 몸이 굳어가던 그때 수영 선생님과 아줌마 아저씨들이 밖으로 나와 나랑 눈이 마주쳤다. 


 "오 애기! 삼겹살 먹으러 갈래?"


왕눈이 아줌마는 카운터에서 수건을 받아 내 머리카락을 꽉 짜주었다. 나는 마음에 긴장이 풀리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저 혹시 할머니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아줌마 아저씨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에게 같이 회식에 가자고 이야기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하며 한쪽 팔로는 절뚝거리는 할머니를 부축했다. 할머니는 내게 그림에 관심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 '부철이네' 삼겹살집에 도착했다.


 근 30년간의 노하우로 다져진 아저씨들의 고기 굽기 실력은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돼지고기의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허겁지겁 고기를 입에 넣었다. 아줌마 아저씨는 잔을 부딪혀 건배를 하고, 수영 선생님은 한잔 받아먹다 얼굴이 벌게져 힘겨워하고 있었다. 나는 배부르게 밥을 먹고 집까지 천천히 걸어왔다. 주머니에 남아있는 노란색 물감이 신경 쓰였지만 나중에 전달해드려야지 생각했다.


 선생님은 50m 기록을 재는 날, 퇴직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서운한 마음이 올라와 물안경을 썼다. 자꾸 눈물이 차올라 물을 빼내야 했지만 아무에게도 내가 우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회식 자리에서 벌게졌던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보았던 선생님의 다른 모습을 더 이상 알아갈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 샤워장으로 가는 그의 뒷모습에 나는 고개를 돌리고 슬프지 않은 척했다. 그는 내가 자꾸 마음에 걸리는지 여러 번 왔다 갔다 했지만 나는 괜찮다며 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래도 자꾸만 눈물이 나 나는 수영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집에 가서 엉엉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때 수영장에 늦게 도착한 할머니가 내게 천천히 다가오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소리를 내며 할머니의 어깨에 기대 한참을 울었다. 


 할머니는 내 손을 꽉 붙잡고 스포츠 센터 앞 건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할머니와 함께 계단을 오르며 할머니를 부축했다. 할머니는 나를 자리에 앉히곤 내게 따뜻한 홍차를 한 잔 내주었다. 달콤하니 맛있으면서도 끝 맛이 느끼했다. 나는 물감이 생각나 주머니에서 노란색 물감을 꺼내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그리니쉬 옐로우네"


할머니는 유창한 발음을 굴리며 내가 내민 노란색 물감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팔레트를 가져와 내가 준 물감을 살짝 짜 물과 함께 섞었다. 초록빛이 섞여 있는 예쁜 노란색이었다. 할머니는 반짝이는 눈으로  붓을 들어 섬세한 터치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할머니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가 작품 앞에 다가섰다. 할머니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내 눈앞에는 정말로 아름다운 노란색 수영장이 펼쳐져 있었다. 


 개인 수영을 하는 사람들, 강습을 받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예술가 할머니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7시 반 타임의 사람들이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