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짐이 아닌 용기

어른이 되어가는 일에 대해.

by 서하

2026년 2월 24일, 화요일.


<무뎌짐이 아닌 용기>


어른이 되어가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어른이 되었다고 믿었던 스무 살의 여름,

하지만 나는 어릴 뿐이었다.

내가 스무 살일 때 그의 나이는 스물셋이었다.

나는 그의 다정한 말투와 따듯한 스킨십에 속아버렸다.


그의 따듯한 말과 행동에 나의 마음은 물렁해졌고, 낯선 그의 스킨십엔 마음을 도둑맞았다.

지금까지 받아 온 숱한 상처의 클리셰다.

그 끝엔 분명 눈물 흘리는 나만이 존재할 것인 걸 미리 알고 있었다. 나의 방어기제는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상처받으면 또 성장하고 말 것이라는 나의 철학은 방어기제를 무시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었다.


그를 좋아했다. 물론 그 역시 알고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그였다.

“내 어디가 좋아?”

나는 솔직하게, 당신이 가진 온도가 좋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내게 말했다.

네 몸은 마음에 들지만, 왠지 사촌 동생의 무엇과 비슷하다고.


당시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어린 탓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스물의 나는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스물하나, 나는 또다시 내가 어른에 도달하지 않았음을 이해하고 있다.


정을 쉽게 줘버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다.

나는 단절이 두렵다.


중학교 시절, 하룻밤 사이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을 경험했다. 정이 들면 그것을 챙겨 도망쳐버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나는 늘 소모적일 수밖에 없었고, 완전히 소모된 나는 대가로 몇 년의 우울을 겪어야만 했다.


다시는 도둑맞을 줄 몰랐다.

성인이 된 이후, 중학교 시절의 그것과는 다르게 사람을 마주친다. 방식이 진해진 만큼, 마음이 더 쓰일 수밖에 없다. 내 마음이 가볍지 않은 만큼, 상대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겼다.


세상은 좋은 사람으로 가득하지 않았고,

그렇게 얼마 전 나는 중학교 시절의 마음과는 비교도 안되게 큰마음을 도둑맞았다.

상처의 이유는 단지 마음이 비어버렸기 때문은 아니다. 신뢰에 대한 문제였고, 책임감에 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으로 자신의 비어버린 마음을 채우기 바쁜 사람들.

나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걸까?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용기에 대한 얘기인 것 같다.

감정이 쓰이는 순간, 그 일은 더 이상 무뎌질 수 있는 일이 아니게 된다.

마음을 도둑맞는 것 역시 내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안아줄 용기를 갖고 있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내가 어른인 줄 알았고,

스무 살의 나는 어른이 된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직 어리기만 하다.


어른이 된다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어쩌면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어른이 되어 나를 안아줘야겠지.

어른이 되어가는 건 용기를 키워가는 일인 것 같아.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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