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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글 Sep 20. 2022

우아하게 일하고 싶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품격 있게 대하는 법

내가 존경하는 선배가 있다. 20대 학창 시절 때부터 존경했다. 장점이 많은 선배이지만 내가 가장 높이 사는 점이 있다면 대학원생이었던 이 선배는 그게 후배이든 교수이든 관계없이 모두에게 동일한 거리의 친근감과 예의를 갖추고 대했다. 그러니까 후배에게 대하는 친근감과 예의를 교수에게도 동일하게 보여줬다. 후배에게 캐주얼 예의로 대한다면 '하늘 같은 교수님'에게도 캐주얼한 예의로 다가가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되바라지거나 과하다는 느낌이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나는 사실 따뜻하냐 차갑냐로 성정을 둘 중 하나로 나눈다면 차가운 쪽에 속하는 사람이다. 가족에게도 냉정하고 매정하게 판단을 내리는 편이'었'다. 내 가족을 이룬 지금은 가족에게 되도록 따뜻하고 온정적으로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과거형으로 쓰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성격이 차가운 편이다.


하지만 이런 내가 일을 할 때는 되도록 그런 면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앞서 밝힌 것과 같이 조직원들의 생일을 개인적으로 챙겨서 축하해주면서 나는 따뜻하고 온정적인 사람이라는 평판을 현 직장에서 얻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평온하고 따뜻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엘리베이터에서 타 부서 사람을 만나면 조금이라도 스몰 톡을 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에도 카카오톡이 중요한 밑바탕이 되어 준다. 카톡 프로필 사진이나 문구에 나온 내용을 스몰 톡 소재로 활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같이 일하는 사람 모두에 대해서 따뜻한 관심을 표명해주려고 노력한다.


전화로만 소통을 하는 유관기관이나 거래처의 담당자에게도 똑같은 예의 바르고 따뜻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전화로만 소통하더라도 결국에는 언젠가 실제로 대면하게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주 기본적인 것이지만, 전화를 할 때는 "안녕하세요? ㅇㅇㅇ연구원의 베이글입니다."라고 자신을 먼저 밝힌다. 그러면 대부분의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똑같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나눠준다. 이것만으로도 조금의 아이스브레이커(ice breaker)가 되어준다. 용건을 바로 시작하기보다 대화하는 사람의 안부를 물으면서 시작하면 대화가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데 전혀 인색하지 않다. 가예약을 보류해주고 있던 기관에 예약을 취소해달라고 전화를 드려야 했는데 업무가 바빠서 전화를 먼저 드리지 못했다. 결국 가예약을 잡아주고 있던 기관에서 먼저 나에게 전화를 주셨는데, 전화번호를 미리 저장해 놓고 있던 덕분에 그 기관 담당자라는 것을 알았기에 받자마자 "선생님 제가 전화를 먼저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라고 대화를 시작했다. 취소 전화를 먼저 했어야 하는 내가 전화를 먼저 하지 않고 그쪽 기관에서 먼저 전화를 해준 점이 감사하고도 죄송한 일이기 때문에 먼저 그렇게 얘기를 했고, 그 후 이어지는 대화가 한결 부드럽게 흘러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저희가 계속해서 이와 같은 사업을 수행할 예정인데 다음번에는 좀 더 미리 예약드려서 꼭 방문해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로 다음을 기약하며 마무리지었다. 당신과 나와의 관계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여운을 남겨준 것이다.

 

이러한 공손하고 겸손한 태도는 윗사람이나 거래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일하는 석사급 연구원들과 대화할 때도 존칭과 존댓말로 대한다. 이것은 내가 석사급 연구원으로 일할 때 느낀 점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석사급 연구원은 박사급 연구원이 주도하고 책임지는 연구를 지원(support)하는 업무를 하게 되는데, 그럼에 있어서 박사급 연구원들은 석사급 연구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한다. 한 마디로 일을 시켜야 하는데 일을 시키는 방식도 박사 개인의 인간성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석사급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경험다.


자기와 동일한 급의 박사에게 업무를 부탁하는 것처럼 공손하게 일을 시키는 박사가 있는가 하면, 부하직원을 막대하듯 당연히 네가 할 일이라는 식으로 안하무인격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 중간도 있었다. 내가 직접 경험을 해보니 상대를 존중하면서 업무를 주는 사람의 일을 가장 정성 들여서 하게 되었다.


나도 나와 같이 일하는 석사급 연구원들이 나와 함께 하는 업무를 내 일처럼 정성껏 해줬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노력은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업무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탁'하는 것이다. 상대의 기존 업무량과 시간, 개인적인 연차 사용 계획 등을 모두 고려하여 업무를 배분하려고 한다. 물론 이러한 특별한 '배려'를 자신의 '권리'인양 악용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본인의 인격이 그 정도라는 것을 드러내는 우를 스스로 범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아랫사람에게도 겸손하고 공손하게 대하는 내 태도를 바꿀 의향은 없다.


20대 석사과정 때 만난 그 선배 덕분에 나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예의 있고 우아하게 대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내가 선망하는 선배가 하는 대로 나도 사회생활을 하고 싶고, 그 선배의 장점을 나도 본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보통의 사람이라면 내가 예의 있고 우아하게 대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나를 대해주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면 그 사람의 인격이 거기서 드러난 것이기 때문에 '아 당신의 인격은 그러하군요'라고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일터에 나가서 우아하게 일하려고 한다. 아니, 우아하게 일하기 위해 일터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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