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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글 Sep 28. 2022

여러 형태의 "갑님"에게 "을"로 살아가는 법

때로는 현명한 거절이 필요하다  

연구기관은 정부부처, 공공기관, 민간협회 등에서 발주한 연구과제를 수주하여 연구를 수행하는 업무를 한다. 소관부처의 산하기관으로서 국가 예산을 지원받아서 연구 및 사업 등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기관은 연구과제를 수주하여 연구를 수행할 의무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 있어서 발주처는 "갑", 연구자는 "을"이 되는 갑을관계가 형성된다. 기관별로, 그리고 담당자 개인의 특성별로 여러 종류의 "갑"님들이 보이는 행태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겉으로 보이는 예의로는 본인과 대등한 존재로 대우해주는 갑님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본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과업을 대신 조사해주는 일종의 "전문가"로서 예우를 해주는 갑님도 있다. 한편, 본인들이 발주한 용역을 수주한 "용역사"로서 한없이 하대하며 몰아치는 갑님도 적지 않다.


사업 진행이 잘 되지 않는 용역이 있었다. 그 이유는 수행사인 우리에게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발주처와 발주처가 관계를 맺고 있는, 연구 진행에 필수적으로 협조를 이끌어내야 하는 기관과의 협력이 잘 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책임자는 발주처 담당자의 온갖 짜증과 하대를 견뎌내야 했다. 심지어 이 발주처 담당자는 밤 11시에 술을 마시고 전화해서 왜 사업 진행이 안 되냐고 다그치기까지 했다.


그런가 하면 우리를 연구자이자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예우를 해주고 본인들의 정책 문제에 대한 해답과 자문을 내놓아 주기를 기대하는 갑님도 있었다. 이 발주처의 담당자는 연구원은 유연근무를 많이 한다고 하던데 근무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지를 사전에 물어보아서 업무 시간 내에 소통을 하고자 하는 예의도 보였다. 데드라인을 고지하거나 문서를 요청할 때에도 공손한 태도로 이메일을 보내주곤 했다.


여러 정부부처를 "갑님"으로 모시면 부처별로 특성이 드러나는 것도 흥미롭다. 모 부처는 연구용역에 할애하는 예산은 적으면서 그 예산을 초과하는 범주의 연구 범위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모 부처는 연구용역 공고를 내고 서면심사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공기관으로 내려가면 발주처가 수행사에 주는 압박은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공공기관들도 소관부처의 관리 통제를 받기 때문에 우리가 수행하는 사업에 대해서 소관부처에 보고를 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서 우리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연구책임자는 단순히 연구를 총괄하는 사람이 아니다. 연구에 수반되는 예산 산출내역서 작성, 인력 투입률 조정, 연구 수행 일정표 작성 등 연구행정적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책임자는 해당 연구용역을 수행하는 연구진의 대표로서 발주처와의 원활한 소통을 담당해야 한다.


처음에 연구책임자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에는 클라이언트인 발주처를 만족시키는 것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고 뭐든지 발주처가 원하는 것은 들어주려고 애썼다. 그랬더니 점점 더 제안요청서에는 제시되어 있지 않는 내용까지 요구하는 행태를 보였다. 선배 연구자분들에게 조언을 구하자, 발주처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 수는 없다고 했다. 우리는 제안요청서에 제시된 범위에 있는 내용을 조사 및 연구해줄 의무가 있으나 그 범위 밖의 내용을 요구한다면 제안 범위를 넘어서는 내용이라는 이유로 거절할 수 있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되, 과도한 요구를 하는 갑님에게는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갑님들은 그야말로 "갑"이기에 요즘 세상에는 "갑질"을 하면 안 된다는 인식 및 실제로 갑질에 대한 제재도 가능하여 그들도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갑질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다만 예전처럼 직접적이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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