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두 개 쓰는 이유
일상과 업무의 물리적 분리
"조용한 퇴사"라는 개념을 요즘 알게 되었다. 정시 출퇴근을 하고, 주어진 책임만큼만 업무를 하고, 업무시간 외에 오는 업무 관련 연락은 받지 않는다는 개념인 것 같다. 그 특징 중 하나로 번호를 두 개 사용하거나 폰을 두 개 사용하는 것도 있다.
나는 5-6년 전부터 폰을 두 개 사용하고 있다. 하나는 가족 및 지인과 일상적인 연락을 주고받는 용도의 폰이고, 다른 하나는 업무관계로 알게 된 사람들과 연락을 취하는 데 사용하는 폰이다. 하나의 폰으로 투 넘버 서비스를 사용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물리적으로 두 개의 폰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일상과 업무를 물리적으로 분리하기 위함이다. 집에 와서는 업무용 폰을 아예 꺼버리고 출근할 때 가지고 나가는 가방에 넣어버리고 아예 확인을 하지 않으면 그 시간 동안만이라도 업무에서 해방될 수 있다. 아예 그 폰 자체를 보기 싫을 정도로 업무관계가 지긋지긋할 때 쓰면 좋은 방법이다. 조금은 업무로부터 물리적으로 떨어진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비록 머릿속에서는 당장 다음 날 혹은 주말 이후 닥칠 업무 걱정이 휘몰아칠지라도.
그런데 중간관리자가 된 이후로는 바뀌었다. 아니, 바뀔 수밖에 없었다. 상사에게 주말에도 종종 연락이 오고, 또 동료 연구원이 다음 날 출근을 못하겠다는 연락을 공휴일이나 주말에 남기기 때문에 업무용 폰을 휴일에 완전히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외국과 같이 하는 업무를 하게 되면서부터 주말에도 업무 이메일은 물론 카톡과 왓츠앱까지 확인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업무가 주는 중압감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되어서 주말이나 연휴 또는 퇴근 후에 오는 업무 연락을 받는데 스트레스가 크지 않게 되었다. 근데 조금 곤혹스러운 것은, 상사는 나에게 이렇게 연락하는데 거리낌이 거의 없는데 반해, 내가 나보다 아래 직급에 있는 연구원에게 업무 시간 외에 연락하기에는 눈치가 보인다는 사실이다. 결국 나는 중간에 낀 세대로 윗사람은 내 눈치를 보지 않지만 나는 아랫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이다. 어떻게 하면 윗사람은 물론 아랫사람에게도 반감을 사지 않을 수 있을지, 현명하게 행동하는 방법이 늘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