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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글 Sep 19. 2022

편애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만(1)

MZ세대라서 이런 건 아니겠지요

나는 공평함과 공정함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받는 대우에 있어서도 공평함과 공정함을 중요시 생각하는데, 예전에는 그렇지 못한 대우를 받았을 때 분개하기도 했다. 지금은 조금 관대해져서 예전만큼 분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이 두 가지를 꼭 지키고자 노력한다.


중간관리자급이 되어서 연구원들을 바라보니 누가 일을 열심히 하고 누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가가 점점 보이게 된다. 성실함 역시 중요한 가치로 삼는 나는 성실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관심과 애정도가 그야말로 '짜게' 식어버리게 된다. 반대로 열심히 일하는 연구원을 보면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싶고 총애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싶다.


앞서 작성한 문단에 대해 두 번째 문단은 매우 모순되는 것이다. 공평함과 공정함을 사랑한다면서 내 내면은 편애의 가능성이 날뛰고 있다. 다만 그것을 드러내느냐 드러내지 않느냐가 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안간힘을 써서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고 하는데, 숨기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한 연구원이 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결론적으로 이직을 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허우대가 멀쩡하고 인사도 꾸벅 잘했으며 예의 바르고 진중한 태도로 타 센터 연구원들에게도 평판이 좋았다. 하지만 같이 업무를 해본 나로서는 정말 노답인 인간이었다. 업무가 많아서 힘든 척 과장을 하는데 실상은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다. 고지식하기로는 정말 '쩔을' 정도라서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대화를 통해서라도 교정할 생각이 없어서 매우 비효율적인 업무 처리 방식을 고수하는데 조언을 준다고 바뀌지 않았다. 게다가 협업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다. 상급자인 나와 의논 없이 자기가 편한 대로 업무를 하고 그걸 나에게 넘겨주며 본인이 할 일은 다 했다는 태도였다. 게다가 업무의 아주 기본적인 것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인 것이 경악스러운 지점이었다. 본인이 작성한 20페이지 이상의 문서를 공유하면서 쪽 번호를 매기지 않는 것은 기본이었다. 업무 이메일을 보낼 때 제목에 "ㅇㅇ에 관한 건에 대해 논의드립니다"라는 이메일 내용의 요점이 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정말 엉뚱하게도 "안녕하십니까 베이글 연구원입니다"라고 본인의 이름을 메일 제목에 쓰는 것으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 정도로 개념이 없구나,라고.


게다가 본인이 저지른 실수를 알려주면, 특히 본인 실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되어서 다 같이 야근을 더 하게 된다든가 하는 경우에, 마음에 없는 소리더라도 "죄송합니다"라고 한 마디 할 법 한데, 12개월 가량 함께 일하는 동안 그 입에서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아, 제가 잘 몰랐습니다."라는 말만 입버릇처럼 할 뿐이었다. 나는 그때 너무나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모르는 것도 죄"라고. 모르면 물어보고 업무를 추진해야지 자기 멋대로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가장 반감을 사게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중요한 제안서를 바로 다음날 제출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라서, 나를 비롯한 모든 연구원들이 야근을 하면서 분량이 100페이지가 넘는 제안서를 검토하는 저녁이었다. 이 날 그 연구원은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다고, 본인의 퇴근시간에 퇴근을 해서 친구와 저녁을 2시간 이상 먹고 8시가 넘어서 복귀해서 똑같이 배분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원 덕분에 모든 사람들의 퇴근 시간은 2시간이 지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본인은 퇴근 시간 이후 복귀해서 일을 했으니 더 당당한 기색이었다. 본인이 친구와 놀면서 저녁까지 먹은 사이에 다른 연구원들은 저녁을 굶고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하려고 맡은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도가 공손한 덕분인지 같이 일을 해보지 않아서 이 연구원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사람을 꽤나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분통 터지는 일이었다. 이렇게 악감정이 쌓여가는데도 겉으로는 평온하게 대해야 하는 내 속마음도 썩어갔다. 특히 이 사람이 본인의 고집대로 업무를 처리해서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으나 이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업무지시를 하려고 노력했다.


이 사람 때문에 나는 MZ세대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마음속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한 사람의 행태를 유사한 연령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화하는 건 비이성적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편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사람은 정말 멋(M)대로 하고 자(Z)기만 아는, MZ세대에 대한 나쁜 점만 똘똘 뭉쳐놓은 사람이었다.


거기다가 더욱더 복장 터지는 점은 같이 일을 해본 나만이 이 사람의 단점을 알고 있고 같이 일을  해보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좋게 평가를 한다는 점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가 당한 '역갑질'을 토로할 수 없어서 한동안 괴로웠다.


남들은 모두 바빠서 동동거리고 있던 시기, 이 연구원은 착실히 업무시간에 이직을 위한 서류 준비를 하고 서류합격 후 여유로운 업무를 등에 업고 면접 준비도 잘했는지 더 좋은 기관에 합격을 했다. 물론 거기서도 계약직 석사급 연구원이긴 하지만 처우는 더 좋으므로 상향이동에 성공한 것이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윈윈인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헌데 끝까지 이기주의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나간 이 연구원. 본인이 그렇게 중요한 업무를 맡아서 바쁘고 업무량이 많다고 토로하고 다녔으면서, 이직을 앞두고 그 중요한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것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이직을 앞두고 제일 처음 말을 꺼낸 것은 '잔여 연차 및 보상휴가'를 언제 쓰겠으니 인수인계는 딱 하루 혹은 이틀만 가능하다는 본인의 '연차 소진 계획표'를 들이밀었다. 거기다가 이직 사실을 알린 후에 알차게도 건강검진 휴가까지 챙겨서 받고 나갔다. 인수인계는 허울뿐이어서 인수인계를 받은 연구원은 나에게 업무 내용을 물으러 왔다.


한 달의 공백기를 갖고 그 연구원은 이직한 기관에 입 사했다. 나는 그 연구원이 입사한 기관의 조직도에서 그 연구원을 찾았다. 놀랍게도 내가 전 직장에서 함께 위촉연구원으로 일하다가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 관리하는 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는 나쁜 유혹에 시달리고 말았다. 그 박사님한테 이 연구원에 대한 레퍼런스를 주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레퍼런스를 줄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난 유혹을 이겨내서 지금은 굳이 그 박사님에게 연락드릴 필요성을 이제는 못 느낀다. 하지만 만약에 그 연구원이 정규직 전환 등 중요한 기점을 앞두고 누군가가 레퍼런스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줄 의향은 있다. "그 연구원과 함께 업무를 여러 차례 함께 했지만 저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직접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요."라고. 굳이 내 입을 더럽혀 가면서 안 좋은 소리를 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아마 이 정도 이야기를 하면 센스가 있는 청자라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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