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데 왜 불안할까요?

5년 차 모션그래픽 디자이너의 이야기 1

by EVAN


저는 특별히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아닙니다.

미대 입시 때는 단 한 번도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고, 비실기 전형으로 간신히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에서도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도 취업 준비는커녕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 하나 없었지만, 4학년 즈음 운 좋게 작은 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모션그래픽 직무로 말이죠.


생각해보면 참 막막한 출발점이었습니다.

다만, 정말 열심히 하기는 했습니다. “디자인을 잘하고 싶다”는 원대한 꿈보다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불안감,

그리고 팀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최선을 다하다 보니 대기업 공채로 취업할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아, 200여 명의 동기 중 (제가 알기로는) 유일하게 대리급으로 조기 승진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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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5년 차가 되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일춘기’ 때문인지, 아니면 배가 불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삶이 안정적이면서도 동시에 불안한 요즘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어디 가서 쉽게 꺼내기도 어렵습니다. 아직 취업하지 못했거나, 상대적으로 더 힘든 환경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큰 목표 없이 시작했지만, 일을 하다 보니 이 업계에서 진심을 담아 멋진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들과 저를 비교하게 되었고, 점점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고민해 보았습니다.

1. 이직을 한다.

2. 유학을 간다.

3. 조직 내에서 다른 업무로 확장한다.


그러던 와중, 조직 개편으로 인해 3D 파트가 신설되었고, (3D를 할 줄도 모르면서) 저는 그곳으로 옮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신설된 조직이었기에 멘토가 있을 리 없었고, (모든 일이 그렇듯) 알아서 잘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수없이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다잡으며, “이번 작업만 마무리해보자.” 다짐하길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한 해가 또 지나갔습니다. 돌아보면, 제 삶을 통틀어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기였고,

분명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어느 정도 포트폴리오도 쌓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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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요?

더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요? 인정받고 싶은 욕심 때문일까요?

아니면 원래 제가 민감한 사람인 걸까요? 요즘은 가끔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고 싶어집니다.

삶이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려움의 연속이라지만, 앞으로 저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혼란스럽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방향은 보이지 않지만, 희미한 미래를 더듬으며 나아가는 하루들과 그 안에서의 고민들을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언젠가 이 불안한 마음이 평온해질 때, 저의 작은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이정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작은 공감이 때로는 큰 희망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내일도 출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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