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기
이탈리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멋진 사람들, 아름다운 문화, 수많은 유적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건 눈부시고 환한 이미지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이탈리아는 달랐다.
이곳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도시였고, 그중에서도 어둠이 더 강렬했다.
더러운 길거리, 곳곳에 깔린 경찰들,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인파, 비싼 물가, 타는 듯한 햇볕.
그러나 동시에 끝내주게 맛있는 음식들, 수백 년을 버텨온 돌기둥, 그리고 어쩐지 묵직한 역사적 시간의 결.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뒤섞여 로마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부다페스트에서 로마의 참피노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약자가 CIA라는 사실이 괜히 웃음이 나왔다.
쌀쌀한 날씨의 부다페스트에서 두꺼운 외투를 챙겨 왔지만, 로마의 28~30도를 웃도는 기온 앞에서는 그저 짐덩이일뿐이었다.
첫인상은 뜨거웠고, 무겁고, 혼란스러웠다.
숙소는 시내 근처였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이동하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낯설고도 묘한 매력을 풍겼다.
지중해 특유의 나무들.
줄기에선 잎이 자라지 않고, 꼭대기에서 우산처럼 둥글게 퍼져나간 나무들이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었다.
그 생각이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과 함께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도시에 들어서자 낭만은 깨졌다.
나를 가장 먼저 맞이한 건 엠뷸런스 사이렌이었다.
그 소리는 익숙한 ‘삐용삐용’이 아니고, 기묘한 억양의 ‘삐꼬삐꼬~’였다.
며칠 뒤 나는 그 소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듣게 되었고, 이 도시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일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거리는 어수선했고, 역 근처에는 집시와 쓰레기, 알 수 없는 악취가 가득했다.
낭만의 이탈리아는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길 어딘가에 두고 와야 했다.
첫날의 목적지는 콜로세움, 판테온, 트레비 분수였다.
나는 여행에서 하루에 세 곳 정도만 목표로 정한다.
많이 보겠다는 욕심보다, 천천히 걷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행이 있었기에, 그날은 바쁘게 움직였다.
결국 3만 보를 걸으며 세 곳을 모두 돌았다.
하이라이트는 바티칸이 될 수도 있었지만,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기 위해 2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빠르게 포기했다.
내 기억 속 첫날 로마의 상징은, 길거리에서 샀던 이탈리아의 물가를 대표하는 3.5유로짜리 파워에이드였다.
다음 일정은 쏘렌토였다.
로마에서 기차로 나폴리까지, 다시 나폴리에서 전철로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쏘렌토는 로마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탁 트인 바다, 아름다운 집들, 그리고 석양이 내려앉는 루프탑에서 본 풍경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도시, 나폴리에서의 기억은 좋지 않았다.
거리는 더럽고 치안은 불안해 보였다.
경찰은 로마보다 더 많이 배치되어 있었고, 길거리에는 대마초 냄새가 진동했다.
합법이든 아니든, 그 냄새는 내게 도시 전체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소 주인의 친절함 덕분에 여행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아침에 먹은 크로와상과 카푸치노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탈리아의 음식은 탁월했다.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맥주까지.
특히 첫날 먹었던 피자는, 아침·점심·저녁 내내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맛이었다.
서빙을 하던 직원들의 태도도 친절했고, 그 따뜻한 분위기가 음식의 맛을 한층 끌어올렸다.
적어도 음식만큼은 이탈리아를 욕할 수 있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 정도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행 내내 불편한 의문을 품었다.
이탈리아는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그런데도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가득하고, 가게들은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문을 닫는다.
관광객은 늘 일정이 어긋나고, 식사 시간도 맞추기 어렵다.
“이 사람들은 정말 돈 벌 생각이 없는 걸까?”
그 생각이 가장 많이 맴돌았다.
하지만 곱씹어 보니, 그것은 단순한 비효율이 아니었다.
그건 문화이자 가치관이었다.
돈을 더 벌 수 있음에도, 그들은 그 시간만큼은 자신들의 삶을 우선시한다.
오후의 달콤한 시간을 지키는 것이, 몇 유로를 더 버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것이다.
아이러니하다.
관광 산업이 GDP를 떠받치면서도, 관광에 불친절한 문화.
그러나 그 속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태도가 숨어 있다.
가장 행복한 시간은, 남이 아닌 내가 누려야 한다는 태도.
나는 그 생각을 곱씹었다.
만약 나도 내 삶에 이런 이탈리아적 태도를 적용할 수 있다면,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소렌토의 아름다운 바다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