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뜻 없어.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은 없다.
아무 생각 없는 듯 들리는 말도 곰곰이 씹어보면 의도가 숨어 있다.
우리는 종종 “별 뜻 없어, 그냥 한 말이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요즘은 누구나 안다. 그런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무 뜻이 없을까.
나는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무의식’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나는 학자가 아니라 정확한 정의를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이해한 무의식은 이렇다.
평소에는 잠잠히 숨어 있다가, 우리가 약해지거나 경계가 느슨해질 때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사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지만, 너무 유치하거나 비도덕적이라서
겉으로는 꾹 눌러 숨겨두는 것.
‘별 뜻 없다’는 말은 사실 이런 무의식의 작용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경험이 있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들을 곰곰이 되짚어보면,
유머라는 그늘에 숨어, 타인을 비난하려는 풍자였거나,
속으로 품었던 시기와 질투가 비집고 나온 말들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별 뜻 없이 하는 말은 없다.
단지 내가 너무 지치거나, 통제력을 잃은 순간에
내 무의식이 잠시 혀를 지배했을 뿐이다.
나는 예전에는 그런 말을 뱉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별 뜻 없어”라는 말로 스스로를 변명하고.
하지만 내가 내뱉은 말에 대한 상대의 반응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사람들은 치사하게도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두고 말한다.
도의적으로 하면 안 되는 말도, 농담처럼 중의적으로 던지면
사회는 어느 정도 허용해 주는 분위기가 있으니까.
나는 그 뒤에 숨어 있었다.
말은 하고 싶지만, 상대의 기분을 진심으로 상하게 할 의도는 없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사실은 단순했다.
나는 그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안에 쌓인 것을 내뱉고 싶었던 것뿐이다.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을 조롱하기 위해 이발사가 땅에 대고 외친 건 아닐 것이다.
그저 차마 드러낼 수 없는 속마음을 어디엔가 쏟아내고 싶었을 뿐이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도는 숨기고 싶지만, 말은 하고 싶은 마음.
졸렬하고 비겁한 마음이다.
미움받기는 싫고, 의도는 들키고 싶지 않으면서,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뱉고 만다.
상대방은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간파하고 화를 낸다.
하지만 나는 의도를 충분히 숨겨 놓았으니
언제든 발을 빼고 도망칠 수 있다.
결국 화를 낸 상대방만 과민한 사람처럼 보인다.
나는 이런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을 안다.
그리고 나 역시 종종 그렇게 말한다.
다만 그동안은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며칠 전, 비로소 자각했다.
내가 무심코 내뱉었다고 여겼던 말들 속에는
언제나 마음속 깊은 의도가 숨어 있었다는 것을.
부러움, 조롱, 질투, 불쾌감…
평소라면 차마 직설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감정들이
그 짧은 말에 담겨 있었다.
겉으로는 파악하기 어렵고,
나 자신조차 곱씹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것들.
나는 늘 착한 사람이기보다 바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내 무심코 뱉은 말들은 결국 쓰레기처럼 감정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행위였다.
이 말은 참으로 못난 마음을 비추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