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고민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하게 된다.
나 역시 최근 들어 이 질문을 진지하게 붙잡기 시작했다.
우연히 시작된 고민이지만, 어느새 내 머릿속 한켠을 늘 차지하고 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요즘은 시대가 좋아,
유명한 사람들의 강연이나 조언을 집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들이 하는 말의 공통점은 하나다.
“쉬운 길을 택하지 말라. 고통스러운 것을 선택하라.”
편하고, 쉽고,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한 삶은 결국 허무하다.
하지만 고통을 감수하며 스스로를 단련한 삶은
끝내 보람과 환희로 이어진다고 그들은 말한다.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돌이켜보면, 돈을 좇던 시절의 나는 공허했다.
통장 잔고는 늘어도, 내 안의 성취감은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취미로 하던 달리기나 운동을 통해
조금씩 쌓여가는 기록을 볼 때 느꼈던 그 뿌듯함,
그게 진짜 ‘살아있다’는 감정이었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
좋아하지도 않지만 돈 때문에 억지로 하는 일은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다.
나는 아직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돈에 매달리는지 모르겠다.
물론 돈이 전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돈은 일종의 방어막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나 병, 혹은 가족의 어려움이 닥쳤을 때
우리를 보호해 주는 최소한의 수단이다.
하지만 그것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의 장치’에 불과하다.
내 삶의 크기가 작다면, 그만큼 필요한 돈도 크지 않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는 것과,
자동차 사고를 당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듯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돈을 왜 모으는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더 자주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돈을 모으는 건 기쁘다.
하지만 그건 성취의 기쁨이라기보다 일종의 안도감에 가깝다.
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물가를 걱정하고, 금리를 보고,
세계정세를 신경 써야 하는 삶은 피곤하다.
나는 이제 그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나는 이제 환희와 기쁨을 쫓는 삶을 살고 싶다.
그것은 거창한 행복이 아니라,
작지만 의미 있는 고통에서 피어나는 감정이다.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을 버는 ‘과정’ 속에서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순간이 더 소중하다.
열심히 일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받는 일,
그것이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다.
누군가가 내 일로 인해 감사함을 느낀다면,
그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일 것이다.
내 하루 중 가장 보람 있는 시간은
독일어를 공부하는 짧은 30분이다.
그 시간은 힘들고 지루하지만,
그 고통이 쌓여 언젠가 큰 환희로 변할 거라 믿는다.
앞으로 내 인생은 아마 고통으로 점철될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이 헛된 게 아니라,
환희와 기쁨으로 이어지는 길이라면
그 삶은 결코 허무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