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워 나누고 싶은 나의 행복
몸이 예전처럼 자유롭지 않으신 할머니는 식사하실 때도 쉬엄쉬엄, 몇 번이고 자세를 고쳐 앉으시며 오랜 시간 드셔야 한다. 식후 복용하셔야 하는 약의 가짓수도 열 개가 넘는다. 의학을 깊게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시선으로는 치료제라기보단 마취제로 느껴지는 약의 개수이다.
이렇게나 독한 종합 마취제를 잘 소화할 수 있는 위가 있긴 할까.
매일 할머니는 채 소화되지 못한 약들로 괴로워하는 속을 위로하시고자 한여름에도 전기장판을 트시고 누워 이불을 덮으신다.
다음 끼니때가 되면 할머니는 속이 불편하신지 입맛이 없다 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끼니를 거르시면 빈속에 또 그 독한 약들을 풀어놓을 수밖에 없어 하는 수 없이 밥 몇 수저라도 들으려 하신다.
그러니 어느 샌가부터 할머니에게 식사 시간은 하루 중 세 번 챙겨 복용하셔야 하는 약이 속을 덜 아프게 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되셨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 앞마당에 나가 하시던 밭일은 할머니의 걱정거리가 되어 주무시려 누우신 할머니를 영문도 모른 채 찾아왔다.
그래도 할머니와 함께여서 감사하다.
할머니의 속이 독한 약들을 소화할 때 할머니께 누룽지 물을 끓여드릴 수 있어,
눈치 없이 할머니를 기다리는 밭의 잡초들이 할머니와 눈을 맞추려 애쓸 때 곡괭이로 파내어 할머니를 잠시나마 안심시켜드릴 수 있어,
“행복하다,” 말씀드렸다.
“그래, 고맙다.” 답하시며 행복의 참뜻을 하나 제안해주셨다.
“별거 없다. 밥 잘 먹고 일 하는 게 제일 행복이다.”
할머니 말씀이 맞다.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여 먹고 잘 소화하지 못한다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몸이 따라주지 않아 할 수 없다면,
그다음의 행복을 찾을 여유나 시간조차 없을 것이다.
할머니 말씀이 아니라면 간과할 수도 있었을 내가 가진 행복들을 지금이나마 자세히 들여다보고 오랜 시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해야겠다. 이 행복들이 나와 함께인 시간 동안 아주 조금이나마 커져서 내 곁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할머니에게 데굴데굴 굴러가 닿아 퍼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