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속의 삶, 삶 속의 집
“겨울엔 화장실과 부엌과 화장실 수도에 물이 졸졸 나오게 해놓고 자라. 그렇지 않으면 다 얼어버리는데 고치려면 돈 많이 든다.”
“들어가자마자 왼쪽 방에 못 쓰는 것 봐서 다 버려라.”
“밖에 환할 때는 불은 끄고 살아라. 전기세 많이 나온다.”
“어두워 지면 바로밖에 불 켜지 마라. 벌거지(벌레)가 많이도 꼬인다. 가로등에 불 켜지면 벌거지가 다 그리로 모인다. 그때 너희도 집에 불 켜 놓아라.”
한집에 오래 사시면서 익히신 집의 습성과 방식.
“엄마한테도 말했지만, 혹시 잊어버리면 네가 기억해서 엄마한테 꼭 전해라.”
그 집과 서로를 편하게 해주기에 적합하다 찾으신 비결들을 할머니는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오랜 시간 정성 들여 가르쳐 주신다.
유학할 때, 미국에 가기 전 한국에 살 때도 꽤 많이 이사했던 나는 얼마나 내가 사는 집에 대해 잘 알고 있던가. 알려고 노력조차 안 해 봤던 것 같다. 이사를 하면 내 방이 어딘지, 친한 친구들과 얼마나 멀어지는지, 혹은 가까워지는지, 가구와 짐을 어디에 놓을 것인지에 대해서만 궁금해했다. 살 때도 집에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속속들이 알지 못했다. 내가 매일 쓰는 물건들만 신경 쓰다 없어지면 찾고, 잊어버리면 새로 구매했다. 그래서 이사할 때 ‘이곳을 떠나는구나…’ 정도의 싱거운 아쉬움밖에는 들지 않았다. 집에 대해 잘 모르니 새로 이사 와 살게 될 사람들에게 남길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그에 반해 할머니는 진정, 이 공간에서 사셨다고 느낀다.
구석구석 손으로 닦으시고, 생활하시며 집과 함께 숨 쉬셨던 것 같다.
할머니의 삶을 이어받아 이곳에서 살아갈 우리에게 할머니는 집에 대해 세세히 소개해 주셨다. 그 후 만난 집은 어렸을 때 할머니를 뵈러 왔을 때와는 또 다른 새로운 첫 만남의 느낌이었다.
집 이곳저곳을 다니며 할머니가 가르쳐 주신, 또 당부하신 말씀을 새긴다. 할머니의 발자국과 눈길을 따라가 본다. 이 집만큼은 그저 살다 가고 싶지 않다. 내가 사는 집이 아닌 나를 살게 해준 집이니만큼. 집 내부와 내부 곳곳에 할머니가 남겨놓으셨을 지혜와 기쁨의 조각들을 찾아가며 배우고 싶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집에 대해 충분히 배웠다는 생각 들 때 할머니를 다시 모셔와 앉아 이야기 나눠야지. 이 집이 할머니와 나에게 선물한 것들은 무엇인가에 대해, 천천히 미소지으며 선물 보따리를 풀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