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기쁨
여러 차례의 수술과 마취로 몸이 약해지신 할머니지만 마음은 그 전보다 더 급해지셨고 하시고자 하는 일은 더 많아지셨다.
비교적 면적이 좁은 아파트에 계시다 조그마한 앞마당이 있고 창고가 있는 시골집에 오시면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 더 바빠지신다.
먼저, 필수록 아픈 무릎은 접어두신 채로 바닥에 있는 가지각색의 꼽재기들을 하나하나 집으셔서 왼손바닥에 쥐어두신다. 그리고는 집 옆, 켜켜이 쌓아놓으셨던 짐들과 상자들을 치워 접어놓으셨다가 휠체어에 올려 창고로 옮기신다. 부츠와 장갑은 귀찮으시다며 얇은 옷만 입으시고 작은 텃밭의 여왕이 되시는 할머니지만 곧 해가 뉘엿뉘엿 지며 단잠을 자고 일어난 모기들이 저마다 밖으로 나오면 피부가 약하신 할머니는 최약체가 되셔서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오신다. 다시 할머니의 체면을 찾으실 차례다. 시집오셨을 때부터 지금까지, 60여 년간을 생활하신 본가로 돌아오시면 부엌에서 식기들을 모조리 꺼내어 재배치하신다. 작은 그릇들부터 큰 그릇까지 차곡차곡 쌓아놓으신 모습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섬세히 골라 올려진 산 정상의 돌탑들을 보는 것 같다.
할머니의 이런 의식이자 루틴의 마지막은 안방을 제외한 두 개의 작은 방에서 이제는 쓰지 않으시는 물건들을 꺼내서 골라 버리고 창가에 옮기시는 일이다. 이때 할머니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들은 보통 부피도 크고 무거운 물건들인데 아프시기 전에 혼자 계실 땐 몇 시간에 걸쳐서라도 옮기셨을 것이다. 지금은 가벼운 물건들도 몇 번 이리저리 옮기시면 일 분에도 몇 번씩 대문 입구에 앉으셔서 터져 나오는 숨을 몰아쉬셔야 한다. 그러니 무거운 물건들은 남의 손을 거쳐 옮기실 수밖에 없는데 당신이 평생 살아오시며 터득한 노하우와 방식을 알 리 없는 손주들이 도움을 드리고자 내민 손들은 할머니께 그저 우왕좌왕하며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가지 밖에로는 안 보이실 테다.
“하니야~!!!!” (‘하니’는 집에서 가족들이 나를 부르는 애칭이다)
부르시는 소리에 다가가 심부름을 하고 나면 보통은 여러 번 가르쳐 주셔야 하고 다시 하라 일러주셔야 한다. 아주 가끔, 내 손에 익은 일이나 사투리 번역이 필요 없는 일을 시키시면 곧장 해내곤 하는데 그럴 땐 크게 기뻐하시며 하시던 일마저 손에서 놓으시고 칭찬해 주신다.
“아유~ 우리 하니 할머니 말 잘 들어서 좋다. 아주 좋아.”
몸이 천천히 따라오는 일을 억지로 해내시며 맺히는 땀방울들 사이로 밝게 빛나는 할머니의 미소를 마주한다. 그때 나는 단순히 할머니가 시켜서 심부름을 하는 게 아니라 할머니가 흡족해하시며 좋아하시는 이 모습을 보려고 할머니의 부름에 답하는구나… 깨닫게 된다.
어쩌면 할머니도 단지 내가 할머니가 하자는 대로 곧바로 알아듣고 행하여 칭찬하시는 게 아닐 수도 있으리라. 내가 할머니를 위해 뛰어나와 도움이 되려 노력하는 모습이 고맙고 예뻐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할머니 ‘말’을 잘 들어서가 아니라 할머니의 말을 ‘잘’ 들어서, 할머니의 행동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원하시는 대로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해서 잠시라도 행복함과 만족함을 느끼신다면, 언제든지 할머니가 부르실 때 뛰쳐나갈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