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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라임 Aug 18. 2022

두 유 노우 라떼?

백수로그 EP 14


 주민센터에서 주 2회 중국어 초급 수업을 듣고 있다.


 수강생은 세 명이다. 나와 젊은 여자분이 계시고, 다른 한 분은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다. 여자분은 중국어를 어느 정도 배우신 티가 난다. 나도 방송대 한 학기 수업을 들어서 수업 내용이 크게 어렵지는 않다. 그런데 어르신은 정말 말 그대로 처음 배우는 초급자셨다. 가끔은 어르신이 느릴 때도 있지만, 초급반에 중국어 한 번 안 배워 본 사람이 오는 건 당연하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젠가 수업 내용을 기반으로 나와 여자분이 A-B-A-B 형태로 중국어를 나누었다. 아마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저는 한국사람입니다. 당신은요?"이런 수준의 대화였고, 우리 둘은 큰 어려움 없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르신은 그 모습에 조금 위축이 되셨던 것 같다. 선생님과 어르신이 이야기할 차례가 오자 "여기 둘은 프리토킹이 되네. 나는 머리가 빨리 안 돌아가."라고 하셨고, 이어지는 선생님과의 대화도 잘하지 못하셨다.


 그래서인지. 다음 수업 시간에는 잠시의 틈을 타 본인 이야기를 하셨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셨다고. 그래서 모든 것이 전과 같지 않다. 면허증만 없으면 사람들은 내가 의사인 줄도 모른다... 등의 이야기였다. 자존심이 상하신 걸까? 내가 느끼기로는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상징성을 본인이 더 잘 아실 테니까.


 그랬던 어르신이 지난주부터 나오지 않으신다. 선생님 말씀으론 문자를 드렸는데 답이 없으시다고 한다. 아마 본인이 잘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상심이 크셨던 것 같다. 주민센터 수업을 하셨던 선생님은 이런 경우가 꽤 많다고 했다. 몇십 년 동안 가르치기만 했던 교수님이라던가, 모든 의사결정을 주도적으로 했던 전직 고위직 어르신들이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나는 말단으로만 살아봐서 그런지, 어디 가서 꼴찌 역할을 하는 게 못마땅하지는 않다. 오히려 잘한다 소리를 들으면 어색하다. 거기다 성격이 원체 낙천적이어서 내가 잘할 거라는 기대를 아예 안 한다. 못하는걸 창피해하지도 않는다는 건 덤이고.


 세상에는 지금은 비록 내가 이렇지만, 나의 라떼는 알아주길 바라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만해도 브런치 글의 조회수가 1만이 넘었을 때 어디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는데, 수십 년을 그렇게 사셨으면 오죽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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