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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라임 Sep 08. 2022

한 달 살기는 다음에 갈게요.

백수로그 EP 15


 요즘 여행 트렌드는 뭐니 뭐니 해도 '  살기'같다. 기간의 특성상 메여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은 쉽게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퇴사하고   살기를 떠나는 분들이 많다.  역시 퇴사 후에는    살기를 해보고 싶었다. 길어야 며칠 머물  있는 여행을 벗어나 여행지가 우리 동네가 되는 그런 여행 말이다. (물론 진짜 우리 동네가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살아보고 싶은 곳은 유럽의 변방 국가이고,  외에는 태국처럼 인프라가 괜찮은 동남아도 좋을  같다. 거기다 지금 배우는 중국어를 써먹어   있는 중국도   번은 살아보고 은 곳이다.


 나는 퇴직금도 있겠다. 뒤만 걱정하지 않는다면, 웬만큼 물가가 높은 곳에서도   살기가 가능은 하다. 배우자도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언제든 오빠 혼자 다녀오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살기를 하고 싶지 않다.


 만약 혼자   살기를 떠난다면,  일상은 이럴 거다. 아침에 동네 산책을 나가 단골로 점찍어둔 곳에서 커피를    것이다. 그리고 점심, 저녁거리를  오겠지. 집에 돌아와서는 방송대 수업을 듣고, 중국어 발음을 녹음해 배우자에게 전송. 아마 그녀는 중국인 같다는 칭찬을  것이다. 하지만  생활이 길어지면, 집에는 한국 라면이 인다. 산책보다는 유튜브를  것이고, 내린 커피보다는 캔으로  음료를  자주 마시게  것이다. 나는 나를 매우  알지는 못하지만, 일상이 늘어지면 어떻게 사는지는 알고 있다. 아마 '며칠 남았지?' 하며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다.


 단순히 내 삶이 루즈해질 것만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더 이상 혼자만의 시간이 즐겁지가 않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삶의 재미가 충족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는 재미의 상당 부분이 배우자와의 농담 따먹기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녀가 퇴근한 후 동네 한 바퀴를 돌 수도 없고, 오늘은 먹지 말자고 해놓고 맥주 한 통을 나눠 마실 수도 없는 한 달이라니. 나에게 그런 한 달은 너무 길다.


 거기다 우리 배우자만 이 집에 남겨놓기는 더더욱 싫다.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로맨틱한 이유는 아니다. 지랄 맞은 우리 집 화장실은 습기 좀 찼다 싶으면 물때가 생긴다. 그리고 로봇 청소기에 낀 머리카락은 정기적으로 청소를 해줘야 하고, 휴지통 크기에 맞는 비닐을 골라 씌우고 그것을 두 개 모아 종량제 봉투 버려야 하는데... 배우자 혼자 이것들을 완벽히 다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얼마 전 우리 아파트 단지의 음식물 쓰레기 통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는 사실도 확인했으니 잘못된 의심은 아닐 테다. 사실 집 관리를 좀 소홀히 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그녀가 한 번도 안 해본 것들을 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배우자는 비교적 이직이 자유로운 직업을 갖고 있다. 그런데 현 직장에 대한 만족감이 커서 당장은 한 달 살기를 계획할 수가 없다. 예전엔 해외여행은 늘 혼자 다녔었다. 그 나름의 운치도 경험했고. 그런데 타지에서 나 혼자 한 달이나 살면 얼마나 심심할지 걱정부터 되는 걸 보니 이제 별 의미가 없다.


 한 달 살기는 좀 이따가 가야겠다.


Sweet home,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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