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도시 기행 07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나라 포르투갈에는 맨유로 가기 전 그가 뛰던 친정팀이 있다. 이름하여 스포르팅 CP. 같은 연고지 리스본의 벤피카, 포르투의 FC 포르투와 함께 포르투갈 리그의 빅3라고 불리는 팀이다. 호날두를 어린 시절 키워냈고, 이후에도 종종 유럽 무대에 얼굴을 비추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들은 재작년 자국 리그에서 우승을 거뒀고, 몇 주 전에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손흥민의 토트넘을 홈으로 불러들여 2:0으로 이겨버린 나름의 강팀이다.
나는 포르투갈에서 스포르팅의 홈 경기장을 찾았지만, 이곳이 내 맘속 1순위는 아니었다. 기왕이면 벤피카나 포르투가 걸리길 바랬다. 하지만 10일 지내는데, 일정에 딱 맞게 홈경기가 있는 팀이 스포르팅뿐이었다. 스포르팅은 어느 리그나 딱 한 팀 정도 있는 녹색을 상징으로 하는 팀이다. 그러면 보통 유니폼이나 굿즈들이 이쁘지가 않다. 하지만 어쩌겠나. 기왕 가기로 한 거 정 붙여야지. 하도 검색을 많이 하다 보니 직관 즈음엔 여기가 괜히 내 팀 같기도 하고 그랬다.
유럽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축구를 너무나 좋아한다. 가령 리스본에는 벤피카와 스포르팅이란 라이벌 팀이 있는데, 현지인에게 “어느 팀 팬이에요?”라고 묻기만 하면 자동으로 수다쟁이가 된다. 우리가 찾은 어느 바의 사장 할아버지는 누구에게나 불친절하다고 악명이 높은 분이었음에도, 내가 이번 주 스포르팅 경기 보러 간다고 하자. “난 벤피카 팬이야. 너 스포르팅 보러 간다고? 어이구… (핸드폰을 꺼내며) 이거 봐라. 총 우승회수 1위, 현재 순위 1위 벤피카다. 봤지? 누가 최고인지 이제 알겠지?”하는 식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당시 대기 중이었는데, 다음에 벤피카 머플러라도 매고 가면 바로 들여보내 주실 듯했다.
그 외에도 축구 이야기 한번 꺼냈다가 쉽게 못 끊을 지경까지 가능 경우는 여럿 있었다. 그냥 일정이 맞아 스포르팅을 선택한 나는 졸지에 ‘한국에서 온 스포르팅 팬’이 되어 버렸고, 경기장 가는 택시에서 만난 기사님은 “스포르팅 팬으로서 매우 환영하네.”라고 하시며 스포르팅이 위대한 이유 다섯 개쯤은 이야기해주셨다. 경기장에서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어느 쪽으로 가야 맥주를 파는지, 표는 어디서 사는지 잘 알려주신 건 덤이었다.
우리가 찾은 경기는 질 빈센테 FC라는 소규모 팀과의 리그 경기였고, 스포르팅이 3:1로 꽤나 가볍게 이긴 경기였다. 라이벌 팀과의 더비 매치거나 챔피언스리스 경기였다면 표 구하기가 더 어려웠을 테고, 좀 더 과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겠지만, 나름 포르투갈 리그를 경험해보기엔 매우 좋은 직관이었다.
경기장은 매우 크고 깔끔해서 경기 관람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관중 가운데는 엄마와 딸이 같이 오는 경우도 많았고, 할아버지와 손녀딸도 같이 손잡고 오셨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라 조금은 생소했지만 보기 좋았다. 하지만 조용히 축구만 보는 분들은 아니었다. 심판의 불리한 판정에는 크게 야유했고, 골이 터지면 모두가 좋아했다. 결론적으로 내가 유럽 축구장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들을 다 느껴볼 수 있었다.
어떤 축덕들은 유럽에 가서 엘 클라시코 같은 빅게임을 직관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물론 볼 수 있으면 빅게임일수록 더 좋겠지. 근데 꼭 그런 경기 아니라도 기회가 되면 여러 경기 직관해봐도 좋을 것 같다. 난 18년 전 리버풀에서 하위권 팀과의 FA컵 경기, 7년 전엔 2부 리그로 떨어진 풀럼대 볼튼의 경기를 보며 추억을 만들었다. 그리고 올해는 리스본에서 스포르팅의 홈경기를 직관했는데 빅게임이 아니라도 유럽 축구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만약 손흥민 보러 가면 딱 한 경기에 모든 돈 쓰지는 말고, 다른 팀 경기도 찾아가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