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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라임 Apr 25. 2022

태백 장성 01(숙박)

우리 소도시 기행 01

우리 커플은 여행을 꽤나 즐긴다. 그래서 과거 각자의 여행 경험을 나누며 상대의 취향을 상당부분 이해하기도 했다. 서로 좋아하는 여행지에 가서 상대방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소개해줬고. 때로는 둘의 의견이 맞는 새로운 여행지를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맛있는 맥주와 같은 이름을 가진 전염병이 창궐했다는 이유로 우리는 몇 년째 반 강제로 국내 여행에 집중하고 있다.


한때는 캠핑에 빠져서 틈만 나면 근교 캠핑장들을 떠돌기도 했다. 갑자기 반차를 쓰고 갈만큼 정말 자주 다녔는데. 호기롭게 간 해변의 캠핑장에서 2박 3일 간 '이러다 우리 텐트 진짜 날아가는 거 아냐?!' 싶을 정도로 센 바람과 시도때도 없이 텐트 안으로 들어오는 고양이들의 습격에 질려서 좀체 발을 떼지 않고 있다.


그 외 여수, 부산, 구례, 군산, 제주, 안동 등 다양한 국내 여행지를 다녀왔다. 그 가운데 재방문한 곳들도 있는데, 작년과 올해 총 4번이나 다녀온 곳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제목과 같은 태백의 장성이란 곳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길래 이름만 들어도 지루할 것 같은 동네에 네 번이나 찾아 갔는지 알려드리겠다.

#숙박

블루문 게스트하우스, 2022 


우리는 일단 숙박에 큰 욕심이 없어서 깔끔한 방과 가격이 좋은 숙소를 최고로 친다. 가끔은 1박에 50만 원이나 하는 숙소에 묵은 적도 있지만, 아무리 방이 좋은들 '몇 배나 지불해야 할 정도인가?'를 생각하면 가성비를 따지게 된다. 특히 배우자는 인스타 앱도 설치 안했으니 어디 자랑할데도 없다. 

내가 태백에 처음 발을 들일때는 혼자였다. 친구들 모임이 있는 배우자를 정선의 한 호텔에 내려준 후,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내일도 같이 가자.'는 마음에 근처 게스트하우스를 뒤졌고, 우연히 걸린게 태백의 '블루문 게스트하우스'였다. 

숙소는 매우 깔끔했고, 당시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을 안튼다는 사장님의 소개에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근처 식당에선 시간이 늦었다고 국밥이나 먹고 가랬다가 어쩔수 없는 듯 삼겹살 2인분을 내어주시고는. 내 옆 테이블에 앉아 인생 이야기를 풀어주신 사장님도 만났다. 참고로 식당 사장님은 천안에서 식당을 오래 하시다가 불법 건축물 판정을 받고, 철거 당하게 되자 고향인 태백에 오셔서 다시 터를 잡으셨고. 나와 동갑인 첫째 아들이 서울에서 대기업을 다님에도 결혼을 하지 않아 매우 걱정이 많으시다고 했다. 

그렇게 '어쩌다 태백까지 갔다.' 수준의 에피소드로 끝날 뻔했는데, 태백 장성에 주저 없이 '또 가자'라고 할 수 있는 이유 가운데 숙박시설에 대한 만족감도 한몫한다. 앞으로 더 이야기할 여러 가지 것들이 아무리 좋은 들, 흔히 말하는 '바퀴벌레 나올 것 같은 XX장'에서 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방과 욕실의 청결 상태가 훌륭할 뿐 아니라 침구도 바싹 말린 하얀 면 커버가 씌워져 있다. 거기다 가격도 1박에 5만 원 수준이니. 크게 혜택을 받을 것도 없지만, 절대 아쉬울 수가 없는 숙소다. 

우리 딴엔 여러 번 가서 익숙한데, 사장님은 늘 '태백에 처음 오셨어요?'라고 물으며 관광객을 돕기 위한 호스트의 자세를 보여주신다. 주말이면 태백산을 등정하기 위한 숙박객들로 예약이 꽉 차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대략 2~3주 전에 예약을 하는데, 한 번도 풀 부킹으로 예약을 하지 못한 적은 없다. 



#산책, 그리고 니어브릿지

니어브릿지, 2022 


태백은 산줄기를 따라 시내와 작은 마을들이 띄엄띄엄 이어져있다. 우리는 시청이 있는 태백 최대 번화가 쪽은 가보지 않았고, 장성동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한다. 매번 태백경찰서 인근에서 장성로와 메밀들길을 따라 걷는데, 왕복으로 약 2시간가량 걸린다. 처음엔 그냥 시골 동네에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찾아 나섰는데, 이 길이 참 매력적이다. 

결코 좁지 않은 황지천을 끼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에 실제로 깎은듯한 산세가 펼쳐진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기 노르웨이 같아.'라며 오바하게 하는 자연경관도 좋고, 배우자가 '아무 생각 안 하게 되는 길'이라고 할 만큼 눈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다. 다니는 차가 거의 없기도 하지만, 도로를 따라 낸 도보길도 거의 완벽하게 갖춰져서 위험하지는 않다. 

그렇게 길을 걷다 보면 천변에 '니어브릿지'라는 카페가 있는데, 인근의 많지 않은 직장인들이나 젊은이들이 찾는 장성의 핫플로 보인다. 커피 외에도 샌드위치, 크로플 등의 간식도 판매하시는데, 우리는 강릉에서 공수한 수제 맥주가 가장 반가웠다. 가는 길에 한 병, 오는 길에도 한 병 할 때도 있고, 이번처럼 커피만 마실 때도 있는데 모두 만족스러웠다. 특히 1층 안쪽으로 가면 흐르는 물길 옆에 있는 야외 테이블이 있고, 날씨가 좋은 봄날엔 그곳에서 고즈넉한 정취를 느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지방 소도시를 여행한다고 늘 정취만 느낄게 아니라 가끔 카페인 충전도 필요한 법인데, 니어브릿지는 그 갈증을 충족시켜 주는 곳이다. 처음엔 부부 내외가 함께 운영하다가, 얼마 전부터 한 분은 태백 시내에 새로 낸 매장에 가 계신다는 것 같다. 


현재 태백 장성을 검색하면 '광업소 폐광, 연금으로 먹고사는 도시'라는 뉴스가 먼저 보인다. 그만큼 시대의 흐름에 많이 밀려난 곳이고, 상인들은 그나마 있던 태백산 등산객도 줄었다며 아쉬워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숙박, 액티비티, 음식까지 큰 고민 없이 해결 가능한 장성이 참 좋다. 특히 때만 되면 생각이 나 참지 못하고 찾게 되는 물닭갈비와 장칼국수에 대한 소개는 다음 편에 남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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