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박목월 「가정」과 영화 <크래쉬>

by 손병일


내겐 삼십여 년 전의 그날이 잊혀 지지 않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

햇빛이 눈부셨던 어느 봄날 토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대여섯 살과 서너 살인 아들과 딸을 집에 남겨둔 채 공덕역을 지나 아현도서관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대로변 인도의 가로수에는 연푸른 잎들이 다투어 피어 있었다. 책과 시(詩)를 향해 걸어가는 내 발걸음도 봄처럼 들떠 있었다. 봄 햇살에 들떠 있던 발걸음이, 아이들을 떠올리는 순간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아, 나는 이토록 눈부신 봄날에 어린아이들을 좁은 방에 남겨둔 채, 책 먼지 쌓인 도서관으로 <시 쓰러>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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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베이비타임즈


그날의 설렘과 쓰라림은 스무 해가 지난 지금도 가슴 깊은 곳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내게 그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은 책 『미셸 오바마』였다. 미셸 오바마의 아버지 이야기가 내 가슴을 ‘후벼팠기’ 때문이었다. 인종차별이 남아 있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 가장으로 사는 일은 분명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미셸의 아버지는 정수장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아버지 프레이저 로빈슨은 다발성 경화증으로 서서히 굳어 가는 몸으로 가족을 위한 사랑과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새벽에도 아이들의 아침밥을 차려놓고 잠들었던 아버지였다.


평일에 아버지가 귀가하면 미셸과 오빠는 계단 꼭대기에서 아버지를 맞으려고 기다렸다. 아버지는 손을 뻗어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고 다른 쪽 다리를 들어 올리는 식으로 천천히 올라가 오누이의 품에 안겼다. 그의 느린 걸음은 도서관을 향하여 가던 내 가벼운 발걸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박목월의 「가정」은 어린 자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표현한 시다.


시의 화자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귀가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신발’을 매개로 탁월하게 형상화해 낸다.


지상에는 / 아홉 켤레의 신발 /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시인은 신발들을 ‘아홉 마리의 강아지’로 표현하며 아이들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시에 듬뿍 담았다. 신발을 강아지로 부르는 순간, 아버지의 마음은 이미 다 드러나 있었다.


내 신발은 / 십 구문 반 /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의 코가 납작한 / 귀염둥아 귀염둥아 / 우리 막내둥아 / 미소하는 / 내 얼굴을 보아라


이 내용 역시 『미셸 오바마』처럼 내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공덕동의 그 토요일 아침을 떠올리게 만들면서. 그리고 다음 표현이 아버지의 심금을 울렸다.


지상에는 /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 존재한다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인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의 유년과 소년, 청소년 시기 동안 아이들 곁을 굳건히 지키며 사랑과 돌봄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은 자기 사랑과 자기 욕망을 먼저 챙겼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을 부지런히 해놓은 뒤 저녁마다 도서관에 가서 시 공부에 매달렸다.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고 시작(詩作) 즐거움을 만끽하다가 마감 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늦은 밤 홀로 운전하며 귀가하던 길의 충만함과 뿌듯함… 그 모든 것을 혼자 누리며 살아온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했다.


영화 <크래쉬>에는 대조적인 두 아버지가 나온다. <크래쉬>는 9․11 테러 직후 극심한 인종 갈등 속에 있던 미국의 사회상을 탁월하게 그린 작품이다. 한 아버지는 성격이 불같은 페르시아계 가게 주인이고, 다른 아버지는 자상하고 온화한 멕시코계 열쇠 수리공이다. 한 아버지는 분노로, 다른 아버지는 사랑으로 세상을 견뎌낸다.


다니엘은 페르시아계 주인의 가게 문 자물쇠를 수리하다가 곤욕을 겪는다. ‘문 자체가 고장 나서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알려주었는데, 주인은 그 말을 믿는다. 결국 다니엘은 자물쇠값을 포기하고 가게를 나선다.


다니엘은 집에 돌아와서는 ‘강아지 같은’ 딸에게 따뜻하고 사려 깊은 아버지가 된다. 총소리를 무서워하는 어린 딸에게 ‘마법의 요정 망토’ 이야기를 해 주고 투명망토를 입혀준다. 딸은 투명망토를 입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환하게 웃는다.


다음 날 아침 페르시아계 주인의 가게에 엄청난 사고가 터진다. 밤새 도둑이 들어와서 돈을 훔쳐 가고 물건들을 부숴 버린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주의로 인한 파멸의 책임을 열쇠 수리공에게 돌린다.


수리공의 집으로 찾아간 가게 주인은 수리공이 도착한 순간 총을 겨눈다. 그때 집안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딸이 자신이 입고 있는 투명망토로 아버지를 지켜주기 위해서 뛰어나간다. 수리공이 뛰어나온 딸을 안은 순간 총이 발사되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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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aniadb.com


그러나 천만다행스럽게도 총알이 공포탄이었음이 밝혀진다. 다니엘은 서둘러 딸을 안고 집으로 들어간다. 가게 주인은 자신이 행했던 범죄와 총알이 사라진 기적에 놀라 얼어붙은 듯 서있는다.


집에 돌아온 가게 주인은 딸 앞에서 수리공의 딸이 천사였다며 눈물을 흘리면서 미소 짓는다. 하지만 진짜 천사는 따로 있었다. 다혈질인 아버지가 사고를 저지를까 봐 총포 점에서 아버지 몰래 공포탄을 사 들고 나왔던 그의 딸이었다.


(…) 지상에는 /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 존재한다 / 미소하는 / 내 얼굴을 보아라


내게도 아이를 향해 ‘미소하는 얼굴’이 있었다. 아들과 아름다운 하루를 보냈던 2001년의 어느 겨울날.


그날 조퇴를 한 나는 일곱 살 아들과 함께 여의도공원에 갔다. 한산한 평일 오후에 아들과 나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넓디넓은 광장을 마음껏 달렸다. 아들은 여동생 없이 아빠하고 둘이서만 공원에서 노는 게 너무 좋아서 신이 날 얼굴이었다.


아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광장을 달린 뒤 간식을 사먹었다. 매점으로 가서 음료수와 핫도그를 먹고 난 뒤, 찐빵과 오뎅도 사 먹었다.


음식을 먹고 난 아들과 나는 찍찍이 공과 장갑을 사서 던지기 놀이를 했다. 처음에 아들은 던져주는 공을 잘 받지 못해서 자주 놓쳤다.


“아빠가 가슴으로 살살 던져 줄 테니까 잘 받아 봐. 겁먹지 말고 공을 끝까지 잘 봐야 돼.”


내 말을 듣고 난 아들이 눈을 크게 뜨며 장갑을 갖다 댔고, 공이 착 달라붙었다.


아들이 공을 하늘까지 높이 던져 달라고 했다. 내가 하늘을 향해 공을 세게 던진 공이 한순간 사라졌다. 아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공을 찾고 있는 사이에 ‘탁’ 하며 내 장갑에 달라붙었다.


아들은 신기해하며 계속 하늘로 공을 던져달라고 했다. 아들은 계속 몇 시냐고 물어왔다. 왜 자꾸 물어보냐고 물으니 “아빠랑 노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라고 했다. 그때 나는 바닥에 떨어진 공을 주우며 아들을 보고 있었다. 마침 서편으로 떨어지고 있는 해가 아들 뒤에서 붉게 빛나고 있었다. 붉은 햇빛을 등지고 웃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비로소 ‘미소하는 아버지’가 되었다. 그 순간, 어설픈 걸음뿐이던 나는 처음으로 아이 앞에서 온전한 ‘아버지’가 되었다.


완벽한 아버지는 없다. 다만 어설픈 걸음으로 아이에게 다가가는 아버지가 있을 뿐이다.





가정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 구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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