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와 영화 <수상한 그녀>
방위소집 전 마지막 수업을 하던 날 눈이 내렸다. 아이들은 <입영 버스 안에서>라는 노래를 방위 버전으로 개사해서 불러주었다. 눈 내리던 운동장에서 몇몇 여학생들은 군대 가는 총각 선생님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기도 했다. 아이들이 고마웠지만, 정작 내 마음을 오래 붙잡은 건 다음 날 새벽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12월 초의 매서운 추위가 불던 날 일찍 나는 안산에서 매송이라는 먼 곳의 훈련소로 출발해야 했다. 전날 밤 아버지는 내일 새벽에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하셨다. 꼭두새벽부터 큰길로 나가신 아버지는 택시를 붙잡아 오려고 애쓰셨다. 스물다섯의 아들을 위해 새벽 추위 속에서 택시를 잡으려 애쓰시던 아버지의 어깨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하지만 그 새벽에 후미진 길로 다니는 택시는 없었다. 일 년 전보다 훌쩍 마르신 아버지가 새벽 추위에 떨며 택시를 잡다가 허탕을 치고 맥없이 돌아오셨다.
“병일아! 택시가 하나도 안 보여. 새벽이라 안 다니나 봐.”
미안함으로 가득하셨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그날 나는 시외버스를 두 번 타고 훈련소로 갔다. 버스에 앉아 가는 두 시간 내내 나는 아버지의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훈련소에서 한 달간 생활하는 동안 그 새벽에 추위에 벌벌 떠셨을 아버지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올라 가슴이 따뜻하게 데워지곤 했다.
출처 : 시사주간
그 새벽에 내가 아버지에게서 느꼈던 사랑은 ‘짠맛’이었다. 함민복의 시 「눈물은 왜 짠가」는 부모님 사랑의 짠맛을 진하게 보여준다.
시인은 가세가 기울어 의지할 데 없는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으로 모셔다 드리는 중이다. 버스 시간을 기다리다 어머니의 제안으로 설렁탕을 먹으러 들어갔다.
출처 : 미트러버뉴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막무가내식 사랑에 시인은 몸 둘 바를 모른다. 읽는 이도 숨을 고르게 되는 장면이다. 내게도 시인처럼 쓰라린 경험을 한 기억이 있기에 더 그런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즈음 겪었던 일이다. 안양 시내에서 아버지와 만나 볼일을 보던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버지는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기분도 많이 좋아 보이셨다. 나는 안경의 한쪽 코걸이가 떨어져 불편한 상태였다. 안경을 벗어 콧등을 문지르는 내 모습을 본 아버지가 자신이 해결해 주겠다고 큰소리를 치셨다. 대로에서 안경점을 발견한 아버지는 성큼성큼 들어갔다. 아버지의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내 마음은 돌처럼 무거웠다.
나는 왠지 조마조마한 마음이 되어 아버지를 따라 들어갔다.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쳐 있던 아버지가, 알코올로 기분이 좋은 아버지가 더할 나위 없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홀로 앉아 있던 주인을 향해 큰소리로 안경을 수리해 달라고 말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의 목소리는 자신이 마땅히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듯 당당한 명령조였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안경점 주인은 설렁탕집 주인아저씨와 달랐다. 술에 취해 거들먹거리는 아버지를 향해 노골적으로 불쾌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인에게 안경을 받아 든 아버지는 “이런 건 서비스로 해주는 거죠”라며 못 박듯 말했다. 주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냉정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것이 아버지를 향한 경멸이라는 것을 알았다.
안경점을 나온 아버지는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한 표정을 지으며 흡족해하셨다. 아버지는 그날 경멸을 온몸으로 받아낸 건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끝내 모르셨다. 그 모멸감만큼 아버지가 부끄러웠다는 사실조차도.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보다,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내 마음’이 더 아팠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부모님이 물불 안 가리는 사랑으로 자식을 챙길 때 부끄러움은 자식의 몫이 된다. 영화 <수상한 그녀>는 어머니의 억척스러움에 질린 아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억척스러운 사랑이 때로는 부끄러움으로 다가오지만, 결국엔 눈부신 사랑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출처 : 더팩트
<수상한 그녀>의 주인공 오말순 할머니는 젊은 날 남편과 사별하고 악착같이 아들을 키운 어머니이다. 겉으로 보기엔 오말순 할머니의 말년은 유복하고 괜찮아 보인다. 할머니는 국립대 대학교수가 된 아들과 며느리, 이십 대의 손자 손녀와 대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다.
오말순 할머니는 아들과 손자 두 남자만 좋아한다. 할머니에게 며느리는 남편이 벌어 오는 돈으로 살림만 하는 사람이다. 그 살림도 제대로 못 하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존재일 뿐이다.
우울증이 깊어지던 며느리에게 급기야 사고가 터진다. 끝없이 스트레스를 겪다가 심장에 이상이 생겨 쓰러지고 만 것이었다.
아들은 아내의 심장 수술 후 중대 결단을 내린다. 아내가 다시 쓰러지는 걸 막기 위해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부탁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며느리에겐 지독한 시어머니였지만 아들을 위해선 못 할 게 없는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요양원행을 앞둔 어느 날 오말순 할머니는 영정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에 들어간다. 서글서글한 사진사는 “50년 이상 젊게 찍어 드리겠다”며 큰소리를 친다. 사진을 찍고 난 오말순 할머니는 앳된 스무살이 되어 사진관을 나선다.
젊어진 오말순은 오두리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삶을 시작한다. 노래 실력을 뽐내며 가수로 데뷔한 오두리는 승승장구한다. 눈부신 시간을 보내던 도중 발에 상처를 입은 오두리는 피가 빠져나간 부위에서 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걸 발견한다. 얼마 뒤 손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급히 RH- 혈액 수혈할 사람을 찾게 된다. 그때 유일한 같은 혈액형이었던 오두리가 수혈자로 나선다.
오두리가 젊어진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은 어머니의 수혈을 만류한다. 그럴 수 없다는 오두리에게 아들이 눈물로 애원한다.
“이젠 비린내 나는 생선 장사도 하지 말고, 자식 때문에 아귀처럼 굴지 말고, 명 짧은 남편도 얻지 말고, 나 같은 못난 아들도 낳지 마세요….”
제발 가시라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말한다.
“아니! 나는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살란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도 다름없이 똑같이 살란다. 그래야 내가 니 엄마고, 니가 내 자식이잖아.”
(…)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부모님의 사랑은 왜 ‘짠맛’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바다처럼 넓고 소금처럼 짜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이 아낌없이 퍼부어주신 시간들은 우리가 그분들의 삶을 조금씩 먹고 자란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어린 생명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물불 가리지 않고 우리를 지켜주신 본능이 부모님의 세포마다 새겨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소금처럼, 그것 없이는 먹고 살 수 없는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살아온 존재들이다.
부모님의 사랑은 짠맛이다. 그 짠맛은 눈물의 맛이었고, 소금처럼 삶을 지탱해 주는 맛이었다. 그 짠맛이 있었기에 우리는 버텼고 자랐고 사랑을 배웠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