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

김현승 「눈물」과 영화 <밀양>

by 손병일

십여 년 전 어느 여학생이 내 앞에서 눈물을 뚝뚝 떨궜을 때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방송으로 밋밋하게 작별 인사를 하고 교무실로 돌아왔을 때였다. 2학년 여학생 세 명이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가신다면서요…?”


“어…”


그중에서도 민정의 표정이 유독 심상치 않았다. 내 앞에서 감정이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감정의 북받침 앞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 순간 민정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나보다 더 당황한 것은 민정의 친구들이었다.


“야, 민정아 왜 이래, 선생님 당황하시잖아.”


민정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며 한참 동안 몸을 떨면서 울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듯한 민정을 달래며 내가 말했다.


“민정아, 선생님들은 5년이 지나면 다 떠나는 거야….”


민정은 나와의 작별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흐윽… 흐윽… 흡사 연인과 갑작스러운 결별을 맞은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해 나는 민정의 담임도 아니었다는 점이 더 당혹스러웠다. 그저 일주일에 두 시간씩 체육수업을 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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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여학생의 눈물은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날 나는 당황해서 민정의 슬픔에 제대로 공명해주지 못했다. 어서 이 난감한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감정이 앞섰다. 민정을 복도로 데리고 나가 어설픈 악수를 나눈 뒤 멋쩍게 헤어지고 말았다.


그날 민정의 눈물 앞에서 내가 느낀 당혹감은 오래 남았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나는 그 감정의 이름을 김현승의 시 「눈물」에서 비로소 알아차렸다.



*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눈물과 마주치는 상황은 늘 당혹스러운 경험이 된다. 김현승의 시 「눈물」을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알려준다.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저……




눈물에는 ‘상대 마음의 옥토에 떨어져 작은 생명이 되길 원하는’ 희구가 담겨 있다. 눈물은 상대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솟아오른다. 상대의 마음에 심기어 싹을 틔우고 점점 자라서 아름드리나무가 되기를 꿈꾸는 소망이 눈물엔 담겨 있다.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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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이 내 앞에서 가을 열매 같은 눈물을 뚝뚝 떨궜을 때, 나는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전체’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타자의 눈물보다 나를 더 당혹스럽게 만드는 건 나 자신의 눈물일 때가 있다. 그해 겨울에 나는 딸이 미국 유학길에 오른 인천공항에서 나의 ‘금가지 않은 전체’인 눈물을 뚝뚝 떨궜다.


딸이 앨리바마 대학으로 떠나게 되던 날은 새해 1월 1일이었다. 유학을 한 주쯤 앞두고 있었던 어느 날, 딸이 나와 아내에게 넌지시 부탁했다. “쿨하게 떠나고 싶다”고.


“난 공항에서도 절대 울지 않을 거야.”


농담처럼 말하는 딸에게 나도 자신 있게 큰소리를 쳤다.


“아빠도 절대 울지 않을 거야.”


그때만 해도 나는 울 이유가 없다고 믿었다. 3년 동안 특성화고 유학반의 힘든 여정을 이겨낸 딸이 넓은 세상에서 요리사의 꿈에 도전하게 됐는데!


1월 1일 새벽 아내와 딸을 태우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의 탑승 구역에서 모녀와 짐을 내려준 뒤 주차장으로 향했다. 지하 1층에 주차를 한 뒤 3층 출국장으로 올라가 보니, 딸이 티켓팅을 위한 긴 줄 속에 들어가 있었다. 아내는 다른 엄마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것뿐




한 시간여가 훌쩍 지나갔다. 인솔 책임자인 선생님이 가족과의 작별 시간으로 10분을 주었다. 딸아이는 교회 친구들, 학교 후배들과 포옹을 나누며 작별의 정을 나눴다. 쿨하고 의젓한 모습이었다. 내가 딸을 안으며 말했다.


“잘 다녀와. 사랑해.”


그 말을 들은 순간 딸이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아빠, 나도 사랑해. 잘 다녀올게…….”


딸의 눈물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쿨한 아빠 역할’을 잘하고 있었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거라고는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딸이 우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눈에서 자꾸만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그것’이 솟아올랐다. 사실은 새벽에 텅 빈 딸의 방을 본 순간부터 이미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마중물처럼 딸의 눈물이 울음 펌프를 작동시킨 것이었다.


나는 딸에게 환하게 웃으며 눈에 맺힌 눈물들을 떨쳐 내려 했다. 딸도 애써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울먹임을 멈추지 못했다. 나는 그런 딸을 보며 더 눈물이 났다. 딸은 멈추지 못하는 아빠의 눈물을 보며 더 흐느꼈다.


마침내 출국장 입구에 도착했다.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의 가족과 친구, 선후배들이 몰려들었다. 수많은 인파의 소음 속에서도 오직 딸의 울먹임만이 진공 상태처럼 선명하게 들려왔다. 딸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나를 찾았다. 딸아이가 가림막에 가려 사라지기 직전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물 맺힌 눈으로 딸에게 환하게 웃어준 뒤 나는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출국장 밖으로 나갔다.


눈물과 웃음은 하나로 엮일 때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영화 <밀양>은 눈물을 모르는 웃음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아프게 보여준다.




*




<밀양>의 주인공 신애는 남편이 죽은 뒤 서울에서 남편의 고향으로 이사를 한다. 밀양에서 음악학원을 차린 신애는 부동산업자와 땅을 보러 다니며 부자 행세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유괴된 아들이 변사체로 발견된다. 범인은 아들의 웅변학원 원장이었다. 식당에서 신애가 부동산업자와 통화하는 걸 눈여겨보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아이를 잃은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신애는 교회 생활을 하며 마음이 평안을 얻는다. 하느님의 사랑에 가까이 다가간 어느 순간 신애는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기로 마음먹는다.


교도소에서 아들을 죽인 남자와 마주한 신애는 “내가 만난 하느님의 사랑을 당신에게 전해주려고 왔다”고 말한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당신을 용서해 주겠다”는 말을 하기 직전 그녀는 남자로부터 자신도 하느님을 만나서 매일매일 감사하며 살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하느님이 자신의 죄를 모두 용서해 주셔서 그 은혜에 날마다 기쁨을 느끼며 산다는 남자의 말에 신애는 얼어붙는다. 이제 신애는 하나님 때문에 원수를 용서해줄 수조차 없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었다. 교도소를 나온 그녀는 주차장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교도소행 이후 신애의 영혼은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녀의 원수는 하나님 때문에 ‘용서를 필요로 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신애에겐 이제 ‘하나님’이 용서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녀가 무너진 것은 신의 부재가 아니라, ‘눈물의 부재’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신애가 원한 것은 신의 용서가 아니라, 인간의 눈물이었다. 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교회 장로를 유혹하기까지 하며 고통에 몸부림치던 신애는 자살을 기도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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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일보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시인은 신이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나의 눈물을 지어 주셨다’고 노래한다. 그 신은 ‘나무의 꽃이 시든 걸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분이다. 시에서 웃음은 ‘아름다운 나무의 시든 꽃’에 비유되고, 눈물은 ‘그 나무에 맺은 열매’에 비유된다.


웃음과 기쁨을 좋은 것이지만, 조심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괴범의 미소와 기쁨이 그러했다. 신의 은총이 아무리 기뻤어도 그는 자신이 살해한 아이의 어머니 앞에서는 눈물을 보였어야 한다. 그가 신애 앞에서 눈물을 떨궜더라면 아름다운 용서로 결실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하나님은 ‘웃음을 지으신 후에’ 서둘러 ‘눈물을 지어 주신’ 게 아닌가 싶다.


눈물은 웃음처럼 타인을 찌르지 않는다. 누구도 아프게 하지 않고 침해하지도 않는다. 눈물방울은 둥글다.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전체’이기 때문이다.


웃음이 꽃처럼 시든 후에도 눈물은 열매가 되어 남는다. 그래서 눈물은 우리가 가진 것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남는, 가장 값진 것이다.











<시 베껴 쓰기>


눈물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것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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