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된 아버지로 산다는 것

김종삼 [묵화]와 영화 <나, 다니엘 브레이크>

by 손병일

장모님이 돌아가신 뒤, 장인어른은 천안에서 오 년을 더 버티다 딸네 집 옆으로 이사를 오셨다. 더 이상 식생활의 어려움과 몸의 쇠약함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과 오 분 거리의 전셋집에 사셨던 장인은 끼니때마다 언덕을 올라 식사를 함께하셨다. 전셋집은 성경을 읽거나 주무시는 용도로 쓰였고, 먹는 것과 입는 것은 딸이 해결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런 반 동거는 아내에게도 장인에게도 결코 쉽지 않았다. 장인은 식사 후 거실에서 성경을 읽곤 했고, 아내는 그 시간만큼 자신의 공간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5289_16608_757.jpg

출처 : 제미니3.0


장인어른은 근린공원에서 사귄 친구분들에게 ‘딸과 함께 기거하는 아버지’로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아버지와 딸은 주기적으로 충돌이 발생하는 등 불화가 잦았다.

아내에게 가장 힘들었던 일은 ‘작아져만 가는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칠 년 동안 중풍 걸린 장모님을 간병했고, 다시 오 년 동안 외로운 생활을 감당하셨던 장인어른은 지치고 나약한 노인이 돼 있었다.

장인에겐 자주 한숨을 내쉬고 짜증 섞인 불평을 터트리는 습관이 배어 있었다. 수시로 터져 나오는 장인어른의 “어휴, 어휴”, “에이, 에이”는 아내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 한숨 소리는 거실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고, 아내는 그 소리가 마치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소음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아내를 더욱 못 견디게 한 것은 장인어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주여!”라는 탄식이었다.


아버지와 딸에게 하루를 함께 지내는 일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내에게 구박과 잔소리를 듣던 장인은 몇 번이나 천안으로 내려가겠다며 집을 박차고 나갔다. 하지만 몇 시간 뒤 고개를 떨군 채 “내가 잘못했다”고 하며 돌아오길 반복하셨다. 그러고 나면 잠시 평화가 찾아왔지만, 얼마 뒤 다시 똑같은 문제로 부녀의 전쟁은 계속됐다.

김종삼의 시 「묵화(墨畫)」는 노년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탁월하게 표현한 시다. 이 시는 나로 하여금 장인어른의 노년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


「묵화(墨畵)」의 첫 행에는 소와 할머니의 손이 함께 등장한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 소리>에 나오는 늙은 소는 진이 다 빠져서 쓰러질 때까지 일만 하다가 죽는다. 하루의 고된 노동이 끝난 뒤 물을 먹는 소와 그 소의 목덜미에 손을 얹은 할머니. 소와 할머니는 고통으로 엮여진 존재들이다.

소에겐 하루분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노동의 감옥이 있다. 할머니가 갇혀 있는 것은 고통스럽게 허물어져 가는 육체의 감옥이다. 소와 할머니는 고통의 감옥에 함께 갇혀 있는 신세다. 물먹는 소의 목덜미에 손을 얹는 할머니는 사람보다 소에게 더 큰 위로를 얻는 듯하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병들고 쇠약한 노년에게 ‘이 하루를 지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 노쇠하게 되면 발잔등이 붓는다. 소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몸이라는 유기체적 조직이 허물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발잔등이 붓는 것에만 멈추지 않는다. 무릎이 닳고 소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다 누구나 가장 무서워하는 일, 자신의 생리작용을 조절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 장인어른에게도 그런 날이 찾아왔다.

서울로 올라오신 지 4년쯤 지났을 무렵 장인어른은 급격히 쇠약해졌다. 누님의 문상을 다녀온 후부터 불안 증세가 극심해져서 정신과 약을 먹게 되었다. 신경안정제 덕분에 심신의 안정을 조금 찾으셨지만, 몸과 마음이 지나치게 다운되는 증세가 동반되었다. 그로 인해 장인어른의 몸은 매일 하시던 공원 걷기를 할 힘조차 잃고 말았다. 얼마 후에는 환각과 망상에 빠지는 섬망 증세까지 보이셨다. 나는 그때 장인어른의 몸이 무너지는 속도가 이렇게 빠를 줄 몰랐다.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던 장인어른에게 급기야 상상조차 두려운 일이 벌어졌다. 밤에 이부자리에 변을 보는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 장면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깊은 흔적을 남겨 놓았다. 즉시 장인어른의 거처를 아파트로 옮겨 우리와 함께 생활하시도록 했다.

고심 끝에 우리 부부는 장인어른의 정신과 약 복용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신경안정제 때문에 장인어른은 새벽에 침대에서 잘 일어나지 못하셨고,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일조차 힘에 부쳐 하셨다.

장인의 불안 증세는 우리와 함께 기거하면서 조금씩 호전되었다. 며칠 후부터 섬망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고, 다리에 힘이 돌아오면서 걸음걸이도 한결 좋아지셨다.


*


영화 <나, 다니엘 브레이크>는 의지할 곳 없는 늙은 남자가 병을 얻은 뒤 외로움 속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유능한 베테랑 목수였던 다니엘 브레이크의 삶은 심장마비를 겪으면서 나락으로 떨어진다. 59세의 다니엘은 수술 뒤 담당 의사로부터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에게 남은 수단은 질병 수당을 받는 것이었고, 그 수당을 받으면 문제 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영국의 복지 시스템은 다니엘 브레이크에게 끝내 질병 수당 지급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후 다니엘은 끝없는 서류 제출과 전화 대기를 반복했지만, 끝내 좌절하고 만다. 분개한 다니엘은 공공건물 벽에 가슴 속에 품어왔던 말들을 검은 스프레이로 크게 써놓는다.

5289_16607_644.jpg

출처 : 씨네21


‘나 다니엘 브레이크는 굶어 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상담 전화의 구린 대기음도 바꿔라!’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하지만 다니엘 브레이크는 질병 수당 기각에 대한 항소심이 열리던 날 법원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고 만다. 그의 장례식장에서 그가 법정에서 발언하고자 했던 말이 지인에 의해 대신 전해진다.

“나는 보험 번호도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브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영화의 주인공 다니엘은 가혹한 노년의 삶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하지만 그의 자존의 노력은 삭막한 영국 복지 시스템 속에서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다니엘의 말년 마음의 풍경은 시 「묵화」의 마지막 행과 정확히 겹친다.


서로 적막하다고,


노년에게 가장 힘든 일은 적막함과 외로움이다. 장인어른도 그러했다.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을 때마다 장인은 가족의 대화로부터 소외돼 있었다. 사실 장인어른과 대화를 나눌 소재가 거의 없기도 했다. 장인은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일 없이 오직 성경만 읽으셨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담을 쌓으신 채 집과 공원, 노인정을 쳇바퀴 돌 듯 돌며 사셨다.

다행스럽게도 장인어른은 아파트에서 함께 기거하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이 많이 회복되셨다. 건강을 되찾기까지는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아내는 어느 때보다 아버지를 살갑게 챙겼다. 아버지의 식욕을 돋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식탁을 차렸다. 장인어른의 뇌와 손을 효과적으로 자극하기 위해 한자 쓰기 책을 사갖고 와서 매일 숙제를 내드렸다. 장인은 그 숙제를 성실히 했을 뿐만 아니라, 틈틈이 설거지까지 함으로써 딸의 정성에 보답하려 애쓰셨다. 딸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꾹꾹 눌러 쓴 한자 정자체는, 다니엘 브레이크가 벽에 쓴 스프레이 글씨만큼이나 절박한 ‘인간 선언’이었을 것이다.


딸에게 짐이 된 존재로 산다는 건 아버지에게 가장 가혹한 일이다. 그 가혹함은 장인어른의 일상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장인어른은 지독한 외로움과 적막함을 홀로 감내하시다 섬망과 퇴행을 겪으셨다.

아내는 장인이 무너지기 직전 따뜻하고 살가운 사랑으로 아버지를 회복시켜 드렸다. 장인어른을 회복시킨 것은 약이 아니라 관계였다. 그 거대한 적막함을 깨뜨린 것은 딸이 챙겨드린 매일의 작은 손길이었다.

이전 15화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